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즘 언니 Nov 19. 2024

당황하지 말고 우아하게!

내 인생의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

딸아이는 점점 신이 나서 몸짓이 커지기 시작한다. 지금 같이 밥을 먹고 있는 가족들에게 오늘 유치원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풀어놓는데 아주 흠뻑 빠져든 것 같다.  신이 나 과장된 손짓을 추가하는 아이 옆에서 난 갑자기 불안해진다. 신명나는 손이 움직일 때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치기 때문이다.      


툭, 출렁, 미끌, 어...어... 촤악~!      

순간 아이는 술래잡기 중인 아이처럼 얼음이 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가득 담고서 말이다. 나는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얼음 땡을 준비한다.    


“당황하지 않아도 돼. 엎지른 걸 치우면 되는 거야. 시작하자! 바닥으로 물이 떨어지겠어.”

“엄마, 미안해. 내가 또 그랬어.”


“엄마도 실수 많이 했어. 실수 하는 건 잘못이 아닌데, 내가 자꾸 실수 하는 걸 알면서 조심하지 않는 건 좀 그래. 나도 불편하고 다른 사람도 불편하잖아.”     


실수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 함 또는 그런 행위’라고 한다.     

여기서의 ‘잘못 함’은 우리가 아는 그 틀리고 그릇된 행동을 의미함이 아닌 ‘잘하지 못함’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실수를 표현하는 단어는 잘 못하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실수의 사전적 의미까지 뒤져가며 아이의 행동을 두둔하는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다.     


나는 '허당'이다. 덜렁거리는 성격에 실수가 잦은 편이라 일상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면, 난 날씨 예보를 보고 오후에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을 들고나가지 않았다. 내 의지라기보다는 엄마가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나와 함께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수십 개의 우산에 대한 애도라고나 할까.     


항상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도 손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타게 부르짖으며 내 동선을 다시 곱씹고 떠올려 핸드폰을 찾아 헤매이다 내 인생 100분의 1의 시간을 쓰는 것 같다. 물건에게 자기 자리를 정해주라고 매번 말하는 남편의 입만 아프게 하고야 마는 것이다.   

  

대학교 때 친구와 길가 푸드트럭에서 닭꼬치를 먹었던 적이 있다.

친구가 옷에 닭꼬치 소스를 흘렸고 휴지걸이 근처에 있던 나는 친구에게 휴지를 건네기 위해 왼손에 들고 있던 닭꼬치를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휴지를 떼었다.     

너무 자연스러웠던 행동의 흐름이었지만, 나도 친구도 내 닭꼬치의 행방을 보고 잠시 얼음.

양념에 빨개진 겨드랑이를 보고 황당함과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하필, 흰색 니트를 입을 건 또 뭐냐면서...     


실수에 따른 결과는 나를 매번 당황스럽고, 매번 부끄럽고, 매번 허둥거리게 한다.

실수가 많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를 잘 아는 나는 아이의 삶에서 이 실수를 똑 떼어내 저~멀리 쫓아내고 싶다.      


혼난다고 고쳐지지 않을 거라는 걸 내 자신이 증거가 되어 잘 알기에,

실수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대신, 결과를 책임지고 상황을 수습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책임과 수습 사이에서 미안함을 표현하고, 도움을 구해보고, 다른 이의 도움에 고마워도 해보며 배우는 게 정말 많아질 것이다.     


먼저 딸이 놀라서 무안하지 않게 딸과 나만의 분위기 환기용 문구를 정해 외쳐준다.     

"당황하지 말고~ 우아~하게!"

그만 외치고 싶은 이 구호(?)를 이제는 스스로 노래하듯 외치며, 오늘도 서툴지만 책임감 가득 담긴 고사리 손은 열심히 움직인다. 엎질러진 물은 물수건으로 선조치 후 마른 냅킨을 뽑아 마무리 해줌과 동시에!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던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가득 담은 특유의 인디언 보조개를 쏴준다.      


평소에는 티격태격 하기 바쁘고 놀리기 바쁜 10살 오빠는 그 보조개의 사과에 화답하듯 부족한 냅킨을 식당 주인께 요청해 더 받아다 준다. 주인분께 죄송하고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 기특한 오빠다.      

실수를 많이 하는 나와 동생을 둔 덕에 함께 사는 나의 오빠와 내 딸의 오빠는 오늘도 식탁 위 물컵을 안쪽으로 옮겨주는 스윗함을 장착하게 되었다. 투덜투덜은 추가 옵션이 아니라 필수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속도로만 달리면 운전 실력이 늘지 않는다. 선형이 구불구불, 표면이 울퉁불퉁한 비포장 시골길도 달려보고 단련되어야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실수가 나를 자라게 하고 내 아이를 자라게 한다.

실수도, 그에 대한 수습도, 그 상황에 대한 감당도 모든 것이 인생의 스승이 되어줄 것이다.

내 인생의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돌려말하지 않을게요. 탕후루마냥 잘 코팅된 실수 매력을 가진 여자, 어때요?

이전 03화 이게 바로 '쿵떡조합'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