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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즘 언니 Nov 12. 2024

이게 바로 '쿵떡조합'이지!

입술에서 미끄러진 귀엽고도 무해한 이야기 조각들

“우리 딸이 그렇다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지, 내가.”

“고마워.”

.

.

.

“근데 엄마, 원래 메주는 콩으로 쑤지 않아?”     


학교에서 억울한 일이 있어 엄마에게 한참 하소연을 하고 났을 때의 상황이었다.

분명 기분이 나빴고, 분한 감정에 바들바들 하며 눈에 힘을 딱! 주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은 엄마의 말실수(?) 공격에 깔깔깔 함께 웃음이 터졌다. 사춘기 딸의 얼굴에서 울상이 걷어지는 것을 본 엄마의 표정은 안도와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묻어난다.


이 어려운 걸 해내지 말입니다. 제가.’


언제나 의도치 않은 순간에 빵빵 터지게 하는 엄마의 무차별 단어 공격은 웃을 일이 많이 없던 그 시절의 사춘기 딸과 엄마 사이에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웃음 버튼이었다.      


엄마가 잘못 사용하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우리 집 한정판, 제품의 고유명사가 엄마의 언어로 바뀌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60대 중반을 달리는 엄마에게 여전히 잘못 쓰이는 그 비운의 단어는 바로 ‘키친타올’이다.


다른 집 엄마들도 혹시 그러실까? 한번도 제대로 불러주신 적이 없다. 우리 집에서 ‘키친타올’은 언제나 ‘치킨타올’이었다.     


손주들이 외가에 놀러가 주방을 기웃거리며 음식 재료도 같이 다듬고, 방금 무쳐내 참기름 향 솔솔나는 나물도 한입 얻어먹으며 놀다보면 할머니의 심부름을 할 때가 있다.      


아가, 저기 치킨타올 두 장만 할머니 주라.”

아이들은 그 말을 찰떡처럼 알아듣고 할머니 앞에 치킨타올을 대령한다. 이래서 보고 듣는 것이 중한가 보다. 아이들에게 그 하얗고 도톰한 큰 휴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치킨타올’이 되었다.     


그렇다면 엄마의 성격을 고대로 닮은 나는 어떠한가.

말해 뭐합니까. 콩 심은 곳에 콩이 나왔고, 붕어빵 틀에서 붕어빵이 나오는 건 당연지사.

나의 주된 실수는 대화를 하다가 뭔가 멋스럽게 표현하고 싶어 영어 단어를 사용할 때 나오곤 한다.    

  

이번 육아휴직이 아무래도 제 캐리어에 영향을 미치네요.”     


말하다가 스스로 쎄함을 느낀다. 어딨니, 내 쥐구멍! 어색하게 ‘커리어’라고 정정해보지만 이미 나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상대방의 흔들리는 눈빛과 민망함을 가리려는 입고리의 미세한 상승을 보고야 만다.

     

평소에 이야기 할 때는 되도록 영어를 쓰지 않도록 애를 쓰는 나인데, 희안하게도 꼭 영어에 능한 이들과 대화할 때면 뭐라도 하나 말의 흐름 속에 영어를 끼워넣어야 그들과 대화가 부드럽게 진행될 거란 강박관념에 시달리곤 한다.


원래 강박이라는 것이 부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 그런지 그 때 쓰는 영어에는 실수가 얹어지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누구에게 그리 지적여 보이고 싶었을까. 나에게 의미있고 소중한 사람들은 내가 쓰는 단어 하나로 날 판단하지 않는데 말이다.    

  

이제 삼대를 내려온 귀엽고도 무해한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울 엄마의 손녀인 우리 딸의 표현에 따르면 단어 실수는 내 입술에서 ‘말이 미끄러진 것’이란다. 

그 오물오물 작고 통통한 그대의 입술에서 미끄러진 말은 뭐가 있을까.     


엄마, 그 치킨 할아버지 가게 우리 동네에 생겼어. 내가 발레 학원 다녀오면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오늘 저녁 거기 어때?”

“치킨 할아버지?”

“아, 거기. 우리 치킨 버거 처음 먹었던 데 있잖아. BHC.”     

.

.

.

“음~ 엄마, 이렇게 같이 먹으니까 진짜 맛있다. 역시 치킨버거랑 콜라도 그렇고, 감자튀김이랑 케첩은 쿵떡조합이야.”     


그렇지, 쿵떡처럼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듣는 게 엄마의 능력임을 언제나 알려주는 너로구나.

보아하니 너도 뭔가 어색함을 느꼈네, 느꼈어. 그럼 이제 깔깔깔 웃어볼까?     

이 특징은 엄마를 거쳐, 나를 거쳐, 손녀에게까지 물려진 귀엽고도 무해한 유전자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커지는 것이 사랑만 있겠는가, 이 귀여운 실수도 내리 유전이고, 내리 사랑스러움이다.


난 아직도 궁금하다. 엄마는 분명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친척 어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확신의 전설이었단 말이다. 그렇다면 평생 엄마의 입술에서 미끄러진 이 단어들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엄마의 치밀한 전략이었던 것일까.     


중국 꺼는 금방 고장나니까 잘 확인하고 사. 마데 인 코리아인지.”

오늘도 난 무방비 상태에서 당해버렸다. 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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