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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즘 언니 Nov 26. 2024

엄마의 새 직업은 '탕후루와 친구들'

누가 행복해지는 결정이냐는 말에 엄마는...

"엄마 회사는 왜 부산에 사는 사람을 세종으로 오라고 하는 거야?"


육아휴직 중이었던 엄마의 복직 소식에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보인 첫 반응이었다.

나의 고용주는 '대한민국 정부'이다. 법적으로 공식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고용주 덕분에 나는 두 아이가 자라나는 반짝반짝한 시절을 웃고 지지고 볶아대며 함께 할 수 있었다. 왜 어른들이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직업으로 공무원을 손꼽는지 알 것 같았다.


문제는 근무지였다. 국가직 공무원은 발령이 날 수 있는 지역의 범위가 '전국'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연고지라든지 가족과의 합가라든지 최대한 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여 발령을 내고자 하지만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던가. 모두의 입맛을 맞출 수 없는 인사이기에 어느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를 담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사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지내고 있는 부산 쪽 기관으로의 복직을 희망했지만, 일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한 회사 입장에서는 현안이 많은 본부 부서에 직원들을 우선 배치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모색했고, 몇 차례 읍소를 거듭했지만 결국, 세종시에 있는 본부로의 복직은 결정되었다.


내 입장만을 고려한다면 본부로의 복직은 베스트였다. 더 이상의 거주지 이동 없이 안정적으로 근무하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고, 근무여건과 승진도 소속기관보다 좋은 처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평온했던 내 세상에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가 큰 돌을 던져 집채만 한 파도를 일으킨 기분일 것이다.




아들 : 엄마 회사는 왜 부산에 사는 사람을 세종으로 오라고 하는 거야?

나    : 엄마가 처음 회사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 어디에서든지 근무해도 좋다고, 그래도 된다고 약속했거든

아들 : 처음부터 그런 계약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럼 엄마한테 오라고 하는 사람은 엄마보다 높은 사람이야?

나    : 마지막에 오라고 결정하는 사람은 회사에서의 역할이 엄마보다 높지.

아들 : 그럼 엄마가 그 말을 거절하기 어렵겠네,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면 안 돼?  나 부산 떠나기 진짜 싫어.(오열 시작)  여기는 내가 태어난 집이라 추억 덩어리고, 내 절친들도 다 여기 있잖아~


나    : 엄마 회사 계속 다니고 싶어. 엄마가 열심히 노력해서 들어간 회사거든

아들 : 엄마는 직업이 중요해, 우리 가족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    : 둘 다 중요하지

아들 :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당연히 우리 가족이 더 중요하지. 누굴 위한 결정이야? 누가 행복해지는 거야? 다른 직장을 새로 구하면 되잖아~

나    : (쭈굴) 엄마가 이제 그만두면 어떤 직업을 할 수 있을까?


아들 : (여전히 오열 중) 잘 들어, 엄마. 우리 학교 앞에 '탕후루와 친구들'이 있어.  엄마도 알잖아, 사장님이랑 엄마 친하니까 부탁드려서 사장님은 탕후루 만들고 엄마가 팔면 안 돼?   엄마는 친절하니까 잘할 수 있어.

나    : 그렇구나, 엄마의 새 직업은 탕후루와 친구들이 되는 거구나. (토닥토닥)




나는 새 직업에 대한 희망을 안고 아들을 다독이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현재 가족이 느끼는 행복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은 엄마가 어디 있을까. 아이의 이야기가 그 입장에서 너무나도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라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끄덕 거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또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순간순간 돌파구를 찾아 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빠의 발령을 포함한 사회생활을 이유로 가족이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그 아빠에게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어 입안에 씁쓸한 맛이 맴돈다.


엄마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라고 대답했다면 아이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나를 위한 결정은 어느 순간부터 허락받고 설득해야 쟁취할 수 있게 된 걸까.


일하는 엄마의 인생을 선택한 이상,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아이 둘까지 4명의 삶이 균형을 잡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 어느 누구의 삶도 소외되지 않도록 각자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아낌없이 지지하고 응원해 주며 균형을 맞춰갈 것이다. 물론 그 균형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에도 연습이 필요하고, 연습이 쌓이고 나면 요령이 생길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번 이사가 우리 가족에게 연습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가족이 뭉쳐졌다 흩어지기도 하고, 온 가족이 갱년기인 엄마에게 집중해 줬다가 잠잠해지면 사춘기인 아들을 집중 마크 하는 것처럼 말이다. 생애주기별 가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고나 할까.


이제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나타나고 인정받는 만큼 가족 안의 생활 모습도 이제는 그 다양성을 더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을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이 사랑할 이 시대의 수많은 엄마들이 가족에게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보다 '내 삶을 지지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나저나 '탕후루와 친구들' 사장님, 저 받아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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