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럭이 들려주는 부동산 이야기(7) : 상업시설 제6편
벌써 상업시설 6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5편 "쇼핑몰의 운영전략"이 조회수 22만 건에 라이킷 40건이 넘는 뜨거운 반응을 보여 주셔서 이번 글에 부담이 많이 되네요.ㅎㅎ
오늘은 이 단어를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무슨 뜻일지 짐작이 되시나요? (직역하면 욕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개와 인간의 수명을 비교해 보면, 개의 1년은 인간의 7년 정도가 됩니다. 즉, "Dog year"란 7년이 1년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는 뜻으로, 과거 7년에 걸쳐 변화하던 일들이 1년, 아니 그보다 짧은 시간에 발생하는 요즘의 시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오늘이 여러분 앞으로의 일생에서 가장 변화가 적은 날이라고 볼 수 있지요.) MIT대학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언급한 이후 널리 통용되는 표현이지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이러한 "Dog year"의 시대에 부동산은 어떻게 적응해 가고 있을까요? 특히나, 지금 다루고 있는 상업시설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가장 변화가 빠른 분야인데요. 그래서, 상업시설을 다루는 사람은 항상 사회변화, 특히 소비 트렌드에 주의를 기울이고 향후의 전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최근의 소비 트렌드를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보고, 이에 발맞춰 상업시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릴 소비 트렌드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 자기만족 심리, 인터넷과 SNS의 발달이라는 세 가지 사회 현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 주시면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첫 번째 소비 트렌드) 적은 돈으로 우아하고 있어 보이게
요즘 세대는 한국사회가 고도의 성장을 거듭하던 70~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이전세 대보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으며, 부모의 교육열에 고학력의 지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취직은 어렵고, 집값은 너무 올라 아무리 저축을 해도 서울에서 내 집 갖기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지요.
그래서 김난도 교수님은 요즘 세대를 베짱이의 DNA를 가진 개미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나빠져 개미처럼 생활해야 하지만 베짱이의 DNA를 가지다 보니, 예전 세대처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현재의 삶을 즐기려는 세대이지요.
비싼 명품을 살 돈은 없지만, 안경, 립스틱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에는 자신만의 취향에 맞춰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김밥천국에서 3,000원짜리 김밥을 사 먹지만 5,000원이 넘는 고급 디저트를 먹으며 만족감을 느끼지요. 비싼 돈 들이지 않고 집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셀프 인테리어나 아기자기한 소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SNS를 통해 표현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런데, SNS 속의 모습은 실제 자신의 모습이 아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가공, 포장하지요. 허세 가득한 모습들이 많습니다.
싸이월드 - 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많다. 페이스북 -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 -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있다. 카카오스토리 - 내 아이가 이렇게 잘 크고 있다
트위터 - 내가 이렇게 이상하다.
태국의 사진작가 촘푸 바리톤이 허세 가득한 SNS의 세태를 풍자한 사진들 (출처 : 촘푸 바리톤 페이스북)
첫 번째 소비 트렌드에 대한 상업시설의 대응
젠틀몬스터(안경점)와 츠타야(서점)가 대표적입니다.
젠틀몬스터 매장을 가보면 이곳이 과연 안경점이 맞는지 싶지요.
젠틀몬스터는 단순히 안경을 파는 곳이 아닌, 스타일리시한 패션피플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으로 포지셔닝했습니다. 즉, 젠틀몬스터에서 안경을 사는 사람은 매장의 모습처럼 패셔너블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젠틀몬스터는 안경 외 일상 잡화 등 다양한 품목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한 셈입니다.
츠타야는 일본 다이칸야마에 있는 서점으로 단순 책방이 아닌, 문화휴식공간으로 포지셔닝한 곳입니다. 서점 내 레스토랑, 카페, 편의점이 있으며,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과 소파도 많습니다. 집과 같은 편안한 공간이 콘셉트이며, 종업원도 나이가 지긋해 집사 같은 느낌을 줍니다.
스킵플로어(중간층)의 무대에서 클래식이나 재즈 공연을 열기도 합니다. 서적은 여행, 요리, 영화, 음악 등 요즘 세대가 선호하는 카테고리별로 분류돼 있는데, 단순히 책을 사는 것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면 음악에 관한 책을 보다가 책 속 음반을 매장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고, 여행에 관한 책을 보다가 바로 여행상품과 항공권 예약을 할 수도 있습니다.
( Source : http://real.tsite.jp/daikanyama/ )
우리나라에서도 츠타야 서점을 참고해 진화하는 서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입점한 교보문고도 그중 한 곳이니 가보시길...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자주 나오는 매그놀리아 베이커리가 판교 현대백화점에 국내 처음 입점했습니다. 드라마 속 캐리가 즐겨 먹는 컵케익을 먹어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대기줄이 어마 무시했지요. 예전만은 못하지만 요즘도 여전히 인기가 높은 곳입니다.
일본 오사카의 도지마에 있는 몽슈슈(Mon chouchou)도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쫀득하고 달콤해 입안에서 살살 녹는 그 맛은 일본을 다녀온 여행객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자자했었는데요. 신세계 강남, 현대 압구정 등 백화점과 가로수길에 매장이 있으며, 인기품목은 저녁이 되기 전에 품절돼 맛보기 어렵습니다.
몽슈슈의 도지마롤입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꿀꺽^^;;
이 밖에도 프랑스 고급 디저트인 마카롱과 에끌레어(가로수길 오델두스), 홈메이드 케이크(이태원 글래머러스 펭귄) 등 수많은 디저트 카페가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두 번째 소비 트렌드) 유명 브랜드보다 가성비가 우선
브랜드는 제품에 두 가지를 보장해 줍니다. 첫 번째가 품질이지요. 제품에 삼성, LG, 소니 로고가 붙어 있으면 어느 정도 이상의 품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가치(또는 이미지)입니다. 루이뷔통, 프라다 가방을 메고 있으면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지요.
그런데 이 두 가지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먼저 품질입니다. 과거에는 제품 정보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 브랜드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요즘은 인터넷 검색으로 너무나도 쉽게 제품 스펙을 비교해 보고 내가 원하는 최적의 사양을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가치입니다. 과거 루이뷔통, 프라다는 워낙 고가이다 보니 아무나 사지 못하는 제품이었습니다. 따라서, 희소성을 근간으로 하는 럭셔리함이 유지되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집에 명품 한두 개 없는 사람이 없지요. 면세점에서건, 해외 직구건 비교적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이렇게 보편화되다 보니 예전의 가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오히려 독특한 디자인, 나만 가지고 다니는 제품, 브랜드 인지도는 낮으나 명품 못지않은 품질을 가진 제품이 더 각광받습니다.
브랜드의 후광효과가 약해지고 제품의 본질, 차별적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김난도 교수님은 복면가왕의 인기 요인도 바로 가수의 이름값(브랜드)이 아닌, 진정한 실력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고 진단하셨는데요. 브랜드의 쇠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는 복면가왕. 돈 없고 빽 없는 요즘 젊은이들이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심리는 대리만족일까요...
두 번째 소비 트렌드에 대한 상업시설의 대응
요즘 PB상품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대형마트, 편의점들은 브랜드 파워는 낮지만 품질은 우수한 제품을 발굴해 자체 브랜드(Private Brand)를 붙여 판매합니다. 소비자도 우수한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지요. 롯데마트의 "통큰", "초이스엘", 이마트의 "피코크" 등이 대표적인 PB브랜드입니다.
롯데마트의 "초이스엘"과 이마트의 "피코크"
편의점도 PB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도시락이 대표적인 상품입니다. 1인 가구 증가 추세로 간편 가정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그야말로 가성비 전쟁입니다. (요즘 말로 혜자스러운 제품들이지요.)
이마트는 한발 더 나아가 노 브랜드(No Brand) 상품을 판매합니다. 2015년 하반기 본격 출시되었는데, '15.7월 매출 20억 원에서 '15.11월 46억 원으로 두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일 정도로 반응이 좋지요.
(세 번째 소비 트렌드) 먹는 게 남는 것, 잘 먹는 게 잘 사는 거지요
요즘 쿡방, 먹방 열기가 뜨겁습니다. 셰프 테이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리사들의 인기가 치솟고, 벤쯔같은 아프리카TV 인기 BJ는 월수입이 2천만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실컷 먹고 돈 벌고... 좋네요 ㅎㅎ)
종편채널의 먹거리 X파일은 MSG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착한 식당으로 소개된 곳은 여지없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삶의 질을 중시하면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지요.
외식 빈도수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집밥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졌습니다. 대충 한 끼를 때우기보다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으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요리하기는 귀찮으니, 쉽고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백종원식 레시피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외식도 건강을 생각해 양식보다 한식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구요.
또한, 미각 노마드(유목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맛집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테이스티 로드(O'live), 맛있는 녀석들(코미디 TV) 등도 바로 이러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지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가 맛자랑 트렌드 형성의 주역입니다.
이밖에 1인 가구의 증가로 나홀로족이 늘면서 혼밥(나 홀로 식사)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두 번째 소비 트렌드에 대한 상업시설의 대응
그로서란트(Grocerant)란 식료품점(Grocery)과 레스토랑(Restaurant)의 합성어로 음식과 음식재료를 함께 파는 복합매장을 말합니다. 방금 먹은 음식을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도록 식재료를 팔고 레시피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한화갤러리아의 "고메이 494", 현대백화점의 "Eataly(Eat+Italy)", 롯데백화점의 "펙(PECK)"이 대표적입니다.
압구정 갤러리아에 위치한 고메이 494. 고메이는 미식가(gourmet)를 뜻하며 494는 갤러리아 백화점의 번지수입니다. (출처 : 갤러리아 공식 블로그)
이밖에도 식재료 판매와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식품업체들이 대거 그로서란트를 오픈하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의 올리브마켓(자사 가공식품 판매), SPC그룹의 파리바케트 마켓(제빵 관련 식자재 판매), 에쓰푸드의 존쿡(육가공 제품 판매) 등이 있습니다.
이마트의 "국산의 힘"이 대표적입니다. 이마트가 우수 농가를 발굴해 좋은 먹거리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판로 확보 및 마케팅을 지원해 주는 상생 프로그램입니다. 좋은 먹거리를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어 소비자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2015년 3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는데요, 매출 규모를 400억 원 수준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 출처 : 국산의 힘 프로젝트 홈페이지 )
이에, 홈플러스도 최근 "신선 플러스 농장"이라는 유사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홈플러스는 해외 신선식품도 직소싱을 통해 우수한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폭발적 인기를 끌던 패밀리 레스토랑(TGIF, 베니건스, 아웃벡스테이크하우스 등)은 이제 매장 찾기도 쉽지 않네요. 이어서 해산물 뷔페(토다이, 무스쿠스, 보노보노, 바이킹)의 시대도 반짝했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한식뷔페 지요(올반, 계절밥상, 자연별곡 등). 앞서 말씀드린 집밥에 대한 니즈, 건강 중시, 그리고 3대(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가 같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인기몰이의 요인이겠네요.
물론 트렌드 변화가 심한 F&B 분야의 특성상 한식뷔페의 인기도 정점을 찍은 듯 합니다. 다음은 어떤 형태가 유행할까요? 제 생각엔 분자요리가 조만간 한번 뜨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봅니다.
분자요리란? 음식의 질감 및 조리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롭게 변형하거나 아예 다른 형태의 음식으로 재창조 하는 것. 음식을 분자단위까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입니다.
이상으로 상업시설 제6편 이야기를 마칩니다. F&B 분야는 얘깃거리가 많아 나중에 좀 더 심도 있게 다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