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관찰자 시점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20대 중반에 첫아이를 낳고 30대 중반에 둘째를 낳았다.
이십 대부터 시작된 육아가 오십 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육아, 이제는 내 인생에서 육아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때로는 엄마였다가 때로는 학부모였다가 그렇게 엄마와 학부모 사이를 오가는 사이, 큰아이는 대학을 진학했고 작은 아이는 지금 고등학생이다.
큰아이가 사춘기의 절정일 때 '입사관전형'이란 생소한 입시제도가 시작됐다. 그즈음 '엄마의 정보력'이란 단어도 따라붙어 유행했다. 그 단어는 직장맘에게 조바심과 위기감을 몰아붙였다.
'나 때문에 아이가 뒤떨어지면 어쩌지?' 첫아이이기 때문에 나와 아이를 분리시킬 생각조차 못했고 아이의 성적을 온전히 내 것으로 착각하던 때다.
직장을 관두고 입시설명회를 다녔다. 그 당시엔 내 선택이 옳은 줄 알았다. 나름 치열하게 입시 분석과 아이 학업 관리에 들어갔다.
그렇게 큰아이 입시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입시의 민낯을 제대로 보게 됐다.
옆에서 본 고등학생 기간은 '열심히'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치열하고 때로는 처절했다.
마치 1킬로미터 앞에 있는 과녁의 정중앙을 맞추기 위해 밤낮으로 화살을 쏘아 대는 것 같았다.
과녁에 정확히 맞추기 위해 몇천 번의 연습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히 과녁의 중앙을 뚫어야 했다.
근데 결전의 순간
화살은 시위를 벗어났는데
과녁이 이동하는 것이다.
아이는 분명 정면에 위치한 과녁을 향해 조준했는데
어느새 과녁은 15도 위로 상승해 있었다.
화살로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였다. (실제로 현 고1, 2,3 입시 전형은 다 다르다::)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입사관 전형은 학생부 종합전형이란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부에 기재됐던 각종 '외부스펙'을 지우는 일이 있었다.
스펙을 쌓는 데는 몇 달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학생부에 기재된 아이의 노력을 지우는 데는 1분조차 걸리지 않았다. 그 당시 아이가 느꼈던 허망함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설명은커녕 위로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밖에.
그 과정은 나이 들어 사회의 조직원이 된 뒤에 감내해야 할 것이었다. 그 감정을 아이는 학생이란 신분으로 미리 겪어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저항조차 못하고 수긍하고, 그걸 수긍하는 자신에게 연민조차 느낄 여유가 없었다.
아이는 학생부 종합전형에 맞춰 다시 서둘러 달려갔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다행스럽게도 큰애는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지. 쳤. 다.
직접 뛸 수는 없었기에 옆에서 지켜보느라 손에 땀만 흥건했다.
이제 다시 둘째 아이가 고등학생, 이 과정을 겪는 것을 다시 지켜봐야 한다.
이미 아는 길이라 떠나는 발걸음이 더 무겁다.
작은 아이 세대에는 수년 전 큰 아이 때와는 달리 '과정 중심'교육이 화두로 떠올랐다.
과정 중심, 참 유익한 말이다.
아이들을 결과로 등급 매기는 매정한 현실에 마음이 아렸던 엄마로서 끌리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과정 중심 교육은
'과정까지 평가하는 교육'일 뿐이었다.
넘쳐나는 수행평가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에 빼곡히 평가가 이어진다.
말하기 쓰기 등 입체적인 평가가 이루어지지만
아이가 받은 점수와 받고 싶은 점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여전히 아이의 몫이다.
"엄마 오늘 국어 글짓기 수행평가 봤는데 마이너스 1점이야."
"응, 어떤 점이 부족해서 마이너스 1점을 받은 건지 알아?"
"몰라. 그냥 난 마이너스 1점이래"
"........."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과정까지 평가하는 과정 중심 교육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진다.
평가의 결과는 받아들일 수 있다.
단, 발전을 위한 지침을 필요로 할 뿐이다.
학교가 '교육기관'인지 '평가기관'인지 혼동되곤 한다.
1학기 기말고사 두 번째 날
오늘도 아이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나오지 않은 점수를 보고 좌절한다
내 점수에 한번 좌절하고
친구의 점수에 한번 더 깊이 낙담한다.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내신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교육적'으로 비교당한다.
수능점수에 따라 한 줄로 세우기가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생겨난
학생부 종합전형은
같은 학교라는 더 작은 영역 안에서
한 줄 세우기를 할 뿐이다.
1등급 한우만 귀한 것이 아니라
1등급 성적표도 희귀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하면 된다'는 말에 고개를 숙이고 살아온 70년생 엄마는
'되니까 하는 거지'라고 고개를 젓는 2004년생 아이의 말에
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7월의 넷째 주
공항 검색대를 지나가듯
한 단계
평가를 마친 아이는
한우처럼 자신의 등 뒤에 매겨진 등급을 짊어지고
다시 일어선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검색대를 지나가야 한다.
또 한 번 과녁이 움직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