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도 Jun 06. 2020

슬기로운 며느리 생활

둔감력으로 방어를 순발력으로 공격을!

<신경 끄기의 기술>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이 결혼하는 사람이 당신과 싸울 사람이다. 당신이 구입하는 집이 당신이 수리할 집이다. 당신이 선택하는 꿈의 직업이 당신에게 스트레스를 줄 직업이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같이 생활한다는 것은 갈등을 피해 가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맘 커뮤니티에 가면 사랑이야기보다 갈등 이야기가 더 많다. 더구나 명절 즈음 며느리로서 시댁과의 갈등 문제를 털어놓는 이야기는 게시판을 온통 덮어버릴 지경이다.  


공통점은 시댁에서 며느리한테 요구하는 ‘도리’와 자신이 내키는 며느리 ‘역할’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 그에 따라 시댁에서는 며느리한테 잔소리를 하며 ‘요구’라는 것을 할 것이고 며느리 입장에서 그런 소리를 듣고 맘이 편할 리가 없다.   


나조차도 30대엔 참 그런 불일치에서 오는 불협화음으로 괴로웠다. 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늘 나한테 ‘좀 더 잘해야 한다’고 하는 걸까? 이미 한 내 노력이 폄하되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반항심도 들기도 했다.


분명 나는 80점 정도는 한 것 같은데 들려오는 소리엔 마이너스 20점이란 평가뿐이었다. 80점을  0부터 채워나간 나로서는 1.2.3.4.5........76.77.78.79.80을 계단 오르듯이 오르느라 헉헉 댔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부족한 20점만 마이너스로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나이 들어 제2의 사춘기에 접어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30대는 늘 완벽한 며느리 도리를 요구하는 시댁 '관계자'들과 이미 할 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자아와의 갈등으로 마음속이 늘 분주하게 투쟁 중이었다.


이제 50세가 넘어 돌이켜보건대 참 비생산적이었다. 딱히 타인의 요구를 듣고 반영해 내 행동을 바꾼 적도 없으면서 늘 타인의 지시를 가슴에 품고 분해하며 살았다. 이 얼마나 한심한가?

어차피 내가 내 판단대로 행동할 거면 타인은 그냥 그들 방식대로 참견 하든 말든 신경을 거두었어야 했다. 굳이 그들의 침입 역사를 켜켜이 마음속에 기록해 둘 필요는 없었다. 일단 내 판단으로 결론 내리고 나서 내 길을 걸어갈 때, 타인의 말엔 좀 더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듯이 그들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권리도 있다(치자). 그저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 돌이켜보니 둔감해야 할 때 쓸데없이 민감한 것이 최대의 실수였다.  


살면서 방어력은 필수다. 내 마음을 편하게 유지하려면 거북이 등껍질 정도는 되는 둔감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방어를 잘하면 상대방의 공격 또한 무해해진다. 나는 상처 받지 않아서 좋고 상대방은 상처 주지 않은 걸로 되니 좋다. 나도 좋고 상대방도 좋다. 이 좋은 둔감함을 키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민감하게 상대방의 지시, 지적을 곱씹었던 나날이 안타깝다.


방어만 한다고 전쟁이 그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는 분명 '선'이 있다.  쓸데없는 참견을 넘어서 확실하게 선을 넘어오는 순간엔 따끔한 일침,  즉 적재적소에 공격도 필요하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 <인생수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들이 당신의 사유지를 가로질러 지나다닌다면.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그 땅이 당신의 것임을 알리는 푯말을 세워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푯말을 세우지 않으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땅은 공유지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 사유지와 같습니다.
가끔씩이라도 우리는 "아뇨"또는 "그건 나한테 상처 주는 일이야". "네가 날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경계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넘겨주게 될 것입니다.
힘을 되찾는 일은 바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시댁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며느리들의 대부분은 ‘말 한마디’ 때문이다. 말은 숨결과 같이 나올 때는 그저 한마디일 뿐인데 가슴에 박히게 되면 도깨비 가슴에 꽂힌 영원불멸한 검처럼 그렇게 살을 파고든다.


내 경우엔 나이 43살 큰애 고2 때까지 “왜 딸을 안 낳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명절마다 만나는 친척  "아들만 둘 낳는 건 목 메달이야!  딸을  낳아야지" "딸 없어서 노년에 얼마나 외로우려고 그래? 빨리 낳아"하는 말에 기가 막혔다.  내 가족계획을 대신 결정하는 것도 모자라 빨리?

그 당시엔 속만 부글거리다 집에 오면 더 속이 끓고 애먼 남편한테 짜증 내는 악순환이 길어졌다.


어려서부터 '조신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 기분 나빠도 참고 넘기는 이상한 (무늬만 착한) 콩쥐 병에 걸렸던 것 같다. 기분이 상했으면 그 앞에서 직접 기분이 상했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아무 말을 못 했다.  앞에선 말 못 하고 뒤에선 속앓이 하는 나날을 보내고 급기야 명절 전날이 되면 그 친적을 볼 스트레스로 밤을 새우는 일이 일어났다. 그제야 결론을 내렸다.

 

"최소한의 반격이 불가피한 순간이 온다면 피하지 말자. 직접 맞서자 "


반격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타이밍이다.

나중에 뒷북으로 조목조목 따지지 말고 그 자리에서 순발력 있게 한마디 툭 던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실 난 워낙 순발력이 없어서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그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멍“해지는 현상을 겪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는 순간 스멀스멀 울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 당시 정지했던 두뇌가 갑자기 광속으로 회전하며 갑자기 100분 토론에 나온 패널처럼 조목조목 반론을 펴 나가고 있다.  


세상에나 나한테 이렇게 논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할 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시간차가 있는 게 문제지 내용적으로는 한치의 모순도 없는 반론이었다. 자. 그럼 이 반론을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이나 지난 뒤에 전화를 걸어”저 그때 말이에요 “라고 하면 십중 팔구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정말로 기억이 나는지 안 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상대방이 저렇게 대응하면 더 이상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그냥 꾹꾹 눌러 내 속만 공기압 팽창의 직전에 이르게 해야 할까?


순발력을 기르자.

그게 안되면 그 결전의 순간을 잠시 화면 정지할 문장 하나 외워 두자.

"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상대방이 자신이 한 말을 되짚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수시로 '멍'해지는 나로서는 이런 '문장'은 사실 고난도다. 가장 쉬운 건 "네?"하고 짧게 순간을 정지시키는 것.

일단 주위를 주목시키고 한 타임 벌여놓는 건 의미가 있다. 최소한 상대방이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식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순간 정지를 시켜 일단 이목을 집중시키고 난 뒤 순발력 없는 나 자신이 할 말을 생각할 시간을 벌자.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때 말하는 것이다.


잊지 말 것. 공격에 필요한 건 타이밍이다. 일단 그 순간을 포착하자.

이렇게 방어와 공격을 하면서 며느리 26년 차 생활이 이어진다. 적어도 화병은 나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



이전 04화 미안해도 괜찮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