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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Mar 30. 2021

마음에도 마스크가 필요해

학교 폭력 방지 마스크

"엄마 오늘 우리 반 A가 귀 옆이 찢어져 병원에 갔어요"

"왜? 어쩌다?"

"B가 때렸어요"

"왜 싸웠는데?"

" A 가 B 엄마를 욕했대요."

"..............."

성인남녀 녀 총 5244명 대상으로 `학교폭력 피해 경험 및 인식`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설문조사에 참여한 성인남녀 응답자 4명 중 1명(24.3%)은 본인이 `실제 학교폭력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이 학교폭력 경험으로 인해 피해를 호소한 항목(중복선택)으로는 신체적 피해(55.2%), 경제적 피해(21.4%) 보다 정신적 피해(87.3%)가 압도적이었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자 중 51.1%, 절반 이상이 주변 사람에게 알리지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매일 경제 2021.3.26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들을 수 있던 이야기다. 학교에 경찰차가 오는 일도 수차례, 심지어 옆 학교에서는 피해학생 부모가 가해학생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피해학생이 짊어지고 갈 상처가 시간이라는 약으로도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다음 날, 

"그래서 어제 그 맞은 학생은 좀 나았어?"

"아니요. 학교에 안 왔어요."

"그러면 그 때린 학생은 미안해하고 반성은 하고 있어?"

"아니요.  A 이가 먼저 잘못한 거니까 자신은 잘못 없대요."

".........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B가 때린 건 잘못했지만  A가 B엄마를 욕하는 것도 잘못이잖아요. 애초에  A 이가 잘못 말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거예요."


오마 낫... 이 부분에서 난 놀라곤 한다.

"아들아 사람을 때려도 되는 이유란 건 없어. 물론 A 가 크게 잘못했지. 그렇지만 상대방의 잘못을 직접 응징할 권한은 없는 거야. 그건 잘못을 잘못으로 되갚는 거거든. 자신의 잘못된 행동의 정당성을 상대방의 잘못에서부터 찾기 시작하면 악이 되풀이되는 거야 (흥분해서 말이 길어진다)."

"(고개를 돌리며)........ 엄마 나 배고파요."

"..........." (우리 아이는 수긍할 수 없는 말을 들으면 꼭 배가 고파지곤 한다. 이쯤에서 잔소리를 멈추라는 신호다)


아이들 학폭 또는 (학폭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친구 간의 싸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항상 그 중심에

'상대방이 먼저 원인을 제공했다'라고 하는 합리화가 자리 잡고 있다.  상대방의 선제 언어폭력으로 인한 자신의 신체적 폭력은 정당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애초에 상대방이 잘못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태라고 여기며 친구를 때리고도 당당하다. 물론 언어폭력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러나 그에 직접 나서서 신체적 폭력으로 응징하다가 주 가해자가 뒤바뀌는 사태가 생기곤 한다. 언어폭력의 피해자가 된 것도 안타까운데 신체적 폭력의 가해자까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A가 언어폭력을 하고 B가 신체적 폭력을 했다면,

B:  '_____A 잘못____ 때문에 (마땅히) 때릴 수밖에 없었지'라고 생각한다.

A:   '_________기 때문에 아프게 맞았다'라고 생각한다.


서로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만 생각하기 때문에 미안해하기보다 자신만 억울하다. 사실은 상대방의 '나쁜' 언행에 물든 것일 뿐인데 응징했다고 잘못 생각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이런 행동들은 점점 폭력을 과격화하고 결과적으로 어느 쪽도 가해행위를 인정하지 않게 한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일단 그 자리에 정지해 놓고 잘잘못을 따져야 하듯이,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도 그 지점에서 멈추고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내 차를 추돌한 차를 내가 다시 들이박으면 가해자가 바뀐다. 차를 세우고 경찰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명확히 분별될 때까지 추가 언행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 잘못을 지적할 권한이 생긴다.


내 인생의 영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 <유브 갓 메일>에 캐슬린 켈리의 대사는 지금도 명징하게 남아있다.

"Whatever you have done to me. There is no excuse for my behavior."

당신이 무엇을 (잘못)했든지 간에 그건 내 행동의 변명이 될 수 없다.


30대 불면증에 시달릴 때, 이 영화 대사 전부를 다 외우도록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다 출근하곤 했다.  여 주인공인 케슬린 켈리는 상대방에게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그에 대한 반격을 즉시 못하곤 한다. 이 대목을 보고  나하고 닮아 유심히 보게 됐다. 난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캐슬린 켈리의 '선한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강자에게는 강할 수 있고 약자에게는 약한 합리적 정의로움"도 내 인생의 이상향과 맞닿아있다.


이 영화 주인공의 말처럼 상대방의 잘못을 되갚지 않고 나는 내 행동의 '마지막 선'을 지킨다면 학교 폭력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물론 다른 대처방안으로 상대방의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 언어폭력은 큰 잘못이기 때문이다. 매달 학교 내 설문조사라든지, 교내 상담과 제보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에 따른 학교차원의 엄중한 처벌도 있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마땅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이들이 직접 나서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응징이라는 명목 하에 서로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학교 폭력에는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원인제공 없이 괴롭힘  당하는 경우는 이 글에서 제외했다)




코로나 19 이후, 조금의 바이러스라도 내 몸에 들어올까 봐 한시도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다.

바이러스의 침투는 그리 두려워하면서 상대방의 잘못에 물드는 것엔 얼마나 조심을 했을까? 되돌아본다.


말을 밉게 하는 친구에겐 나도 밉게 말하려고 애쓴 적도 있다.

뜨끔한 마음이 들 때면 '네가 먼저 그랬잖아'라고 덮어버리기도 했다.


'너도 나한테 잘해주지 않았잖아.'

하며 점점 상대방을 소홀히 한 적도 있다? (많다!)


상대방의 잘못에 물들면서 그게 감정적 감염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건 아닌지 짚어보려 한다.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나의 응징.

내 마음속에서 피어난 정당화한 미움.

상대방의 잘못을 저장해놓고 내가 잘못해도 될 명분을 마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그런 행동들이 정당한 선이었는지, 미운 마음에 감염된 거였는지를 짚어본다.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이리 애쓰는 내가

상대방의 무례함과 잘못으로부터는 왜 그리 쉽게 물든 걸까.

네가 침투해 내 안으로 들어와 내가 너와 닮아가는 게 감염이란 걸 몰랐던 거일 수도 있다.

또한 다수가 관습적으로 행하는 잘못에도 쉽게 물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려고 한다.


조심스레 내 마음에도 마스크를 씌우며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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