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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Feb 01. 2024

음식의 지배권


나는 음식에 대한 지배권을 잃은 부모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부모들은 식사 때마다 자녀들을 식당에 온 손님을 대하듯 메뉴의 선택권을 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자신들의 입맛에 익숙하고 잘 맞는 음식만을 찾는다. 이때 부모는 식당의 직원 같은 태도를 취하고, 항상 똑같은 것만 먹는다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음식을 권한다. 하지만 자신이 말한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하는 아이들의 생떼에 어쩔 줄 몰라한다. 결국 아이의 요구 조건에 맞춰 아이가 원하는 대로 음식을 준다. 이런 VIP가 따로 없다.

부모는 아이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들이 영양가 있는 다양한 음식에 대한 입맛을 일깨울 수 있도록 안내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식습관을 가르칠 권위가 무너진 부모들은 아이들을 편식의 늪에서 절대로 구해낼 수 없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먹고 자란 아이들은 앞으로 건강하지 못한 어른으로 자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올바른 식습관을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의 무기력한 태도가 평생 아이의 건강을 해칠 식습관의 싹을 틔우는 것이다.

편식을 고치려면 부모는 음식에 대한 지배권을 가져야 한다. 아니, 사실 그런 지배권을 이미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밥을 안 먹겠다고 억지를 부리고 떼를 쓰지만, 이런 아이들의 협박은 사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부모가 없으면 아이들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배고픈 아이들은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밥투정하는 아이들의 태도를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음식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그것을 잊은 채로 아이들이 먹고자 하는 음식만 주는 것은 스스로 올바른 식습관 가르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오히려 이것은 편식을 부추기고 인정하는 태도다. 부모가 주는 음식이 싫다고 아이들이 손사래 친다면, 먹지 말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밥을 안 먹겠다고 하는 아이들은 영악하게도 그런 협박이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이용한다. 하지만 부모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그런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부모가 가지는 음식의 지배권을 이용한 행동은 음식선택을 부모가 하는 것이다. 부모가 선택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은 아이들의 의무다. 그래야 골고루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아이들이 가질 수 있고, 아이들은 꼭 먹어야 할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부모와 아이들은 반드시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음식에 대한 어떤 인상을 갖는다. 아이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즐기는 부모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앞에 놓인 음식이 맛있고 안전한 음식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처음 보는 음식이라도 그 음식을 부모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한 번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더불어 다양한 음식에 금세 익숙해질 가능성도 커진다.

나는 애초에 우리 아이들에게 식사 메뉴의 선택권은 오직 부모에게만 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먹지 않아도 좋지만, 배가 고파도 아무런 음식도 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나의 신념을 아이들은 받아들였고, 어떠한 음식이 나와도 아이들은 불평, 불만을 늘어놓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식사는 다양한 음식을 받아들이도록 입맛을 계발하는 교육과도 같다. 이 점을 부모들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 가족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같은 음식을 먹는다. 심지어 음식점에서도 아이들용 음식을 따로 시킨 적이 없다. 부모와 같은 메뉴를 먹는다. 오직 아이들의 음식과 부모의 음식이 다를 때는 아이들이 먹기 힘든 매운 음식 같은 경우일 뿐이다. 아이들용 음식이 본래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음식이 있다고 하는 마케팅은 모두 교묘한 속임수다.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부모처럼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입맛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이 먹고 싶은 대로 놔두면 아이들은 편식하는 어른이 된다. 아이들은 음식에 대해 잘 모른다. 오직 가공식품처럼 누구나 쉽게 찾게 되는 그런 음식만을 찾을 뿐이다. 다양한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은 사회활동에서 매우 중요하며, 특히 건강에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들이 밥만 잘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소연하듯 말한다. 아이들이 밥만 잘 먹어도 육아가 가진 어려움의 절반은 덜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식사에 대한 지배권에 아이들이 순응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서서히 편식의 늪에서 빠져나올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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