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배고픔은 생존을 위한 연료가 없음을 알리는 경고 메시지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인간은 음식을 찾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생리적인 반응이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요즘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정말로 아는지 궁금하다. 지인의 집에는 아이들의 손이 닿는 곳마다 젤리가 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젤리를 먹고 싶을 때마다 마음껏 먹는다. 그리고 언제든지 아이들은 냉장고를 열어서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먹는다.
배고픔은 생리학적으로 혈당이 떨어져야 몸에서 느껴지는 현상인데, 늘 먹을 것을 쥐고 사는 아이들에게는 혈당이 떨어질 이유가 없다. 먹는 순간이 있다면 먹지 않는 시간이 존재해야 하는데, 아이들의 생활 속에는 그런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순수한 아이들에게 먹는 일은 기원전 인류가 가진 기본적인 음식섭취의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호모사피엔스 이전부터 음식은 인류의 생존수단이었다. 생존을 위한 음식의 섭취는 현재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미래에 배고픔의 시점을 늦추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래서 인류는 최대한 음식을 많이 먹어두려고 한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인류에게 과식은 피할 수 없는 습성이라고 했다. 그런 음식섭취의 습성이 그대로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존재한다.
다만, 음식섭취에 대한 태도가 성인과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성인들은 눈앞에 음식이 있어도 참을성을 발휘하거나 합리적으로 생각하여 그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통제력이 없다. 그런 아이들이 늘 먹을 것을 손에 쥐고 있느니 혈당이 떨어지지 않아서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뭐든지 맛있다. 굳이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뭐든지 다 맛있다. 이건 성인이건 아이건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느끼는 현상이다. 배고플 때, 맛보는 음식은 아주 좋은 미식의 기억으로 아이들의 뇌리에 기억된다. 만약 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 있다면, 이때를 이용하여 조금씩 먹여보는 것도 좋다. 배고픔은 밥 안 먹는 아이들을 치료할 약이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더라도 곧바로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음식을 따로 내어주지 않는다. 대신 음식을 만들면서 냄새를 풍긴다. 아이들은 음식 냄새를 맡으며 부엌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부엌에 올 때마다 풍기는 냄새에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는, 식사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드디어 식사시간,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좋은 냄새를 풍기는 음식에 코를 박고 한 번 음미한 다음 ‘맛있게 먹겠습니다 ‘는 식사 인사와 함께 맛있게 음식을 먹는다. 음식이 특별히 맛있기보다는 아이들의 배고픔을 느끼며 음식을 급히 원하기 때문이다. 배가 고플 때 식사를 하는 아이들은 금세 한 그릇을 비우고는 한 그릇 더를 외친다.
식사를 잘하게 만드는 방법은 아이들을 배고프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간식을 통제하는 것이다. 간식을 통제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식사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를 잃는다. 부모는 아이들의 먹을 것을 통제해야 될 의무와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자본주의의 무한한 음식 공급은 인간이 통제력을 잃고 계속 먹게 만든다. 그런데 그런 음식들이 대부분 식품첨가물과 지방, 그리고 당분이 가득 들어간 가공식품들이다. 무엇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할지를 아이들의 결정에 맡기지 말고, 부모의 통제하에 아이들이 결정하게 해야 한다. 집안에 아이들의 손이 닿는 곳에 먹을 것을 모두 치워야 한다. 그리고 배고픈 아이들의 표정에 설득당하여 먹을 것을 곧바로 주지 말자. 동시에 배고픈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배고픔은 맛있는 식사를 위한 좋은 신호이고, 곧 식사를 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래야 아이들은 올바른 식습관을 기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