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채식으로 본 밥상의 품격

매일 먹는 음식이 지겨운 당신에게

by 홍작가

여기 매일 먹는 저희 집 밥상이 있습니다. 참 특별할 것 없는 밥상입니다. 요리를 취미로 하고 있지만 늘 제가 먹는 밥상은 실제로 이렇습니다. 요즘 밀키트나 배달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에 비하면 저희 집 밥상은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희 가족은 이 밥상에서 웃고 떠들며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밥을 먹다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차려 먹는데 왜 늘 맛있지?"

"그러게."

"우리의 입맛이 바뀐 걸까?"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평생 차려먹자."

"좋아!"

60D47FDC-63D5-4F68-A44D-76CA7617B8A1.jpg
왼쪽: 매일 먹는 채식 밥상, 오른쪽: 브로콜리 마늘볶음

매일 먹는 밥상의 고달픔

매일 비슷한 음식, 특별할 것이 없는 밥상을 먹고 있음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이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식사를 준비하는 당사자에게나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나 너무나도 편한 일입니다. 메뉴를 고민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고달프니까요. 매일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만큼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대신 메뉴를 정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약 메뉴를 대신 정해주고 때로는 나의 취향에 따라 또는 기분에 따라 그날 먹을 것을 추천해주는 인공지능(AI) 로봇이 있다면 기꺼이 돈을 주고 대여를 하거나 돈을 주고 구매하여 서비스를 제공받고 싶지 않을까요. 그만큼 먹는 일은 우리에게 중요하기도 하지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좋은 음식의 '틀'

무엇을 먹을까 하는 단순하지만 배가 슬슬 아파오는 것 같은 기분의 스트레스를 주는 고민을 저는 내려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먹는 음식에는 '틀'이 있기 때문이죠.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로이스트루프는 [윤리적인 요구]에서 '형성의지'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형성의지'란 우리가 '삶에 의미 있는 형태'를 부여 함으로써 보다 온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절제의 기술]에서 스벤 브링크만은 '우리가 선택한 일에만 마음을 쓰고, 다른 중요하지 않은 일은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을 때'에만 삶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메뉴는 오히려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선택지가 되기보다는 어떤 음식을 먹으면 더 큰 만족감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가치판단의 오류를 범하게 만듭니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먹은 후의 자신의 기분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죠. 저는 채식을 통해 이런 '선택의 역설'을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동물성 음식을 제외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채소 이외엔 없기 때문이죠. 채식이라는 틀이 음식 선택의 폭을 줄였고 선택의 폭이 줄어든 만큼 음식 자체의 맛과 영양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는 밥상의 기준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좋은 밥상은 좋은 음식이 그 기준입니다. 음식이라고 입에 들어오는 모든 '먹을 것'을 음식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지방이 너무 많거나 너무 단 가공식품들은 음식이라기보다는 화합물에 가깝습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상품'이죠. 인간의 생존과 건강을 위해 영양가가 풍부해야만이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식으로서 채소에는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고 몸이 살찌지 않도록 지방 함량이 극도로 적습니다. 또한 많은 채소들은 저마다 감칠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근, 감자, 브로콜리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감자를 우려내어 만든 채수로 떡볶이를 만들면 신기하게도 아주 맛있습니다. 동물성 육수로 만든 떡볶이 양념보다 깔끔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감칠맛이 아주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채소는 기름에 살짝 볶는 정도의 간단한 조리만으로도 아주 맛있는 요리가 됩니다. 양념이 곧 채소이고 채소가 곧 음식 자체의 맛이죠. 영양면에서 조리면에서 부족하지 않은 채소는 가장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채식을 하면 입맛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더 좋은 맛을 찾습니다. 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채식을 하면서 자연환경에 대한 공부를 자연스럽게 하기 때문에 식재료는 대부분 신선하고 제철의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죠. 저희 집은 가공식품을 거의 구매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식으로 사용하는 재료들은 값이 조금 나가더라도 신선하고 갓 재배해온 재료를 구매합니다. 그래서 식재료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장을 아주 일찍 보러 가기도 합니다. 좋은 식재료는 최고의 맛을 내고 그런 식재료로 만든 음식은 맛이 매우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좋은 음식을 만들게 되는 선순환의 구조가 생깁니다. 간단히 몇 가지 밑반찬으로 식탁을 차렸지만 전부 유기농 또는 로컬 식재료와 좋은 소금과 천연 양념(전통방식으로 만든 고추장, 된장 등)으로 만들었으니 맛과 영양 그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는 밥상입니다.


둘째, 좋은 밥상은 음식 맛도 좋아야 하겠지만 '지속 가능한 밥상'이죠. 우리는 매번 다양한 음식을 찾지만 금방 싫증을 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시중에서 다양한 가공식품을 사 먹습니다. 어느 음식 하나에 정착하기 힘들죠. 혹시 그런 음식이 있다면 아마도 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찾기 힘들죠. 이것도 사실 맛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매일 먹는 음식이 같더라도 늘 먹을 때마다 새롭고 지겹지 않다면 그 음식을 안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직장을 다니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사 먹는 음식 맛에 질려서 도시락을 싸게 됩니다. 이상하게 그 맛이 그 맛 같거든요. 하지만 채소로 음식을 만들면 질리지 않습니다. 콩나물로 간단한 콩나물무침을 해도 매번 맛있게 먹게 됩니다. 양념의 역할도 있겠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채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맛이 풍부하기 때문이죠. 고소한 맛, 아삭한 식감, 풍부한 수분감, 짭조름한 맛, 파, 마늘의 감칠맛 등이 우리의 식욕을 자극하고 질리지 않게 만듭니다. 다양하게 음식을 구성하지 않아도 매일 먹는 음식을 오래 두고 즐길 수 있다면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좋은 밥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셋째, 비싼 음식들은 대부분 셰프가 직접 만듭니다. 식재료도 직접 고르고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것만 추려서 만들죠. 즉석으로 만든 신선한 음식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럽습니다. 채소 요리는 대부분 간단합니다. 나물 요리나 채소 요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뿐이죠. 어쨌든 채식을 하면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직접 식재료를 고르게 되죠. 내가 먹는 것이기 때문에 또는 가족이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식재료 선정도 까다롭습니다. 조금 돈이 들더라도 막 들어온 신선한 식재료를 고릅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가는 식료품점에는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사람들이 장을 보죠. 그래서 오후 늦게 들르면 냉장고 안이 텅텅 비어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고른 식재료로 자신이 직접 만드는 음식은 자신의 입맛에도 맞출 수 있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만족감이 큽니다. SNS에서 자신의 피드에 그날 먹은 음식을 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너무 맛있었어요. 꼭 만들어보세요." 하는 별 5개짜리 평의 설명을 사진 밑에 달죠. 바로 자신이 만들었고 내 입맛에 맞기 때문이죠. 요리의 맛은 사실 주관적이기 때문에 내 입맛에 맞는 요리가 가장 맛있는 요리죠. 채식을 하면서 자신이 만든 음식이 가장 좋은 음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음식은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음식의 품격은 달라집니다. 저는 채식을 하기 전에 음식은 내가 즐기는 하나의 요소 정도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채식을 하고 나서부터는 음식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이 음식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떤 음식이든 그 음식만의 장점과 맛을 찾고 즐깁니다. 채소는 사람이 키우기는 하지만 자연의 도움이 없이는 아주 작은 새싹조차도 틔우지 못하는 생명이죠. 이런 생명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면서 마지막에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냅니다. 농부들은 그 씨앗을 받아 다시 땅에 심고 채소를 기르죠. 상추를 길러보면 이런 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상추의 줄기가 자라면서 잎을 내면 사람들이 따고 어느 정도 줄기가 두터워지고 길어지면 마지막에 꽃을 피워 씨앗을 내죠. 채소는 자연의 순환에서 얻어지는 선한 선물 같은 느낌입니다. 기상이변으로 이런 상황이 늘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후가 좋지 않을 때면 농부들의 손길은 그 어느 때보다 수고스러워집니다. 그렇게 오른 채소들은 우리 식탁에서 소박하지만 귀중한 음식으로 재탄생하죠. 결국 이러한 과정을 알고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 식탁의 품격을 또한 결정합니다.


요즘은 먹는 것도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시대입니다. 그만큼 우리 삶에 즐길만한 일이 없다는 반증이겠죠. 슬프게도 '쾌락적응'이라는 말처럼 계속 쾌락을 위해 먹거리를 추구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더욱더 허탈하고 허기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겠죠. 쾌락적 응이란 아무리 행복하거나 불행한 일이라도 적응하여 일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쾌락을 위해 선택한 음식에도 결국 적응하게 되어 또 다른 음식을 찾게 되죠. 음식이 음식다워지지 못하는 순간입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생명이 순환하는 과정입니다. 자연이 차려준 밥상은 또 다른 생명을 낳습니다. 사람과 환경을 모두 살리는 밥상 그리고 그 밥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는 우리 태도가 밥상의 품격을 만듭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채식의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