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Jan 19. 2023

약에 관대한 편.

일단 살고 보자. 

어린 시절의 나는 유난히 약을 많이 먹는 아이였다. 자주 아팠다. 배도 자주 아프고, 열도 자주 나고, 토도 자주 했다. 약도 자주 먹고 수액도 자주 맞았다. 작고 말랐고, 비리비리하고 허여멀건했다. 엄마아빠의 근심거리 중에 하나, 몸이 약한 아이. 아팠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약을 먹으면 속이 울렁거려 바로 토를 해서 약을 두 번 세 번 먹어야 했고, 울렁거리는 속을 참아 내라고 엄마는 만화 영화도 틀어주고 체조도 시켜보았는데 결국엔 다 토해내기 일쑤였다. 힘이 없어 누워 있다가도 토를 해서 앓는 나의 머리맡에는 늘 대야가 있었다. 내가 위장이 약해 약을 못 받아 낸 건지, 그 당시의 소아용 약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면 약과 울렁거림, 토악질까지 세트로 함께 온다. 


첫 아이가 처음 아팠던 날이 기억난다. 돌이 안 되었을 때 처음으로 열이 났다. 그냥 열감기였다. 처방받은 약도 타이레놀 물약뿐, 작은 약병에 담아서 주라는데 원래도 입이 짧아 먹는 것이 적었던 아이는 약조차도 거부했다. 약병을 물려줘도 먹지 않았고 분유에 타 주어도 분유를 몇 모금 빨고 말아 버렸다. 수저에 약을 따라 한 숟갈 먹여보려 해도 그것마저 거부하여 그냥 하루이틀 열나고 스스로 나았던 첫 열감기이다. 그 이후로도 콧물이며 잔기침 같은 감기를 자주 앓기 시작했는데 초보 엄마라, 첫 아이라, 항생제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노란 콧물을 질질 흘리는 아이에게 주겠다는 항생제를 극구 마다하고 일반 약으로 받아오기도 하였다. 항생제 먹으면 몸의 균형이 망가진 다지? 장의 유익균까지 없애서 몸을 더 약하게 만든다지?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다음엔 더 센 약을 먹어야 한다던데? 하며 말이다. 그렇게 첫째는 스스로 콧물감기를 이겨내기도 했다. 항생제 쓰면 사흘이면 나을 거를 삼 주는 걸린 것 같다. 콧물을 그렇게 흘리는 동안 중이염이나 축농증이 안 온 것이 지금 생각하면 엄청 행운이었다. 그렇게 오래 걸려 제 면역으로 이겨냈다 해도, 콧물감기는 또 걸린다. 유의미하게 몸이 튼튼해 지진 않는다.


그러다 둘째를 낳았다. 둘째는 백일도 되지 않아 첫 열이 났다. 아기가 보통 육 개월까지는 엄마 뱃속에서 면역물질을 갖고 나와 어른 면역 수준으로 건강하여 웬만해선 아프지 않다 들었는데, 형아의 감기를 그대로 옮은 모양이었다. 열나는 아기가 너무 작아서 타이레놀 먹일 생각도 못 하고 소아과로 뛰었다. 처방받은 약은 타이레놀뿐이었다. 다행히 둘째는 이것도 저것도 잘 먹는 아기라 약도 잘 받아먹었다. 조그만 아기의 몸에서 열이 나면, 첫째 둘째 아니라 아홉째 열째라도 엄마는 걱정이 앞설 것이다. 그렇게 첫 열을 시작으로 둘째도 자주 아팠다. 어린이집 다니는 형아가 자주 아프니, 동생도 따라서 자주 아프고 그때부터 우리 집은 한 놈 아프면 하루이틀 상간에 둘이 같이 아픈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감기, 장염, 수족구, 신통하게도 코로나는 온 가족이 확진 상태에서도 큰 아이는 걸리지 않았다. 다른 감기는 잘 걸리면서 코로나에 있어서는 어떤 슈퍼 면역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 둘을 키우는 8년 차 엄마는 아이 둘을 데리고 병원에 갈 때마다 항생제를 그냥 달라고 한다. 몇 년을 다닌 단골병원이라 이런저런 넋두리 겸 그냥 항생제 먹고 빨리 낳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린다. 물론 내가 달란다고 선생님께서 필요 없는 항생제를 처방해 주시진 않는다. 항생제를 적당히 처방하는 병원이라는 인증문구 같은 것이 떡하니 붙어 있는 병원이다. 항생제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던 초보 엄마에서 이젠 빨리 나아야 온 식구가 고생을 덜 한다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갈아타서 아픈 아이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른 식구가 옮기 전에 빨리 나아야 한다는 마음에 항생제 처방을 선택한다. 결정은 선생님의 몫이지만 말이다. 


아이들에겐 마음 깊이 윤허하고 선택지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린 것이 항생제라면, 나 자신에겐 수면제, 소화제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이다(라고 한다). 그런 내가 아들을 둘이나 낳았고, 8년째 육아 중이고, 아들들은 엄마를 사랑하여 엄마 옆에서 붙어서 잔다. 가뜩이나 소리와 잠자리에 예민하던 내가 수면 장애가 온건 당연하다. 가뜩이나 잠이 들지 못하는, 입면 장애가 있는데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것들이 두 명이나, (가끔은 세명) 이 있으니 불면증은 심해지고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신경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수면제를 처방받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선택의 문제라고 하셨다. 약을 안 먹어도 되고, 약하게 먹어도 되고, 불필요하게 센 약은 안 되지만 적절한 처방을 받아도 된다고. 나는 적절한 처방을 선택했다. 약이라면 거부감이 조금 있던 나였는데, 그래서 생리통도 그냥 참을 때가 많았고 웬만한 감기도 그냥 이불 쓰고 일찍 자는 걸로 이겨내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내 컨디션이 안 좋으면, 네 식구가 힘들기에, 나는 적절한 약물을 선택한다. 최근에 소화장애가 심하게 왔다. 기능성 위장장애라고 했다. 그게 뭐냐 하면 위와 장이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뭘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다. 소화 과정을 거쳐 영양분이 되어 몸 곳곳으로 퍼져야 할 음식물이 위에 정체되어 있어서 그런지 나는 당이 떨어지고, 피곤하고, 배가 고픈데 위장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참고로 내시경 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깨끗한 위장이다. 이런 걸 기능성 위장장애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신경성이라는 거다. 위장 운동을 도와주는 약을 처방받았다. 간단한 운동과 스트레칭도 해 보는데, 간단한 걸로 움직일 위장이 아닌 모양이다. 마침 수면제가 떨어져 신경정신과에 찾아 이 얘기를 하였더니 위장은 실제로 정신상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면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한다. 원한다면 신경 안정제 처방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의존성이 있을 수 있으니 적절히 (알아서) 조절해서 드시면 되고, 괜찮아지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한다. 처방을 원한다고 했다. 일단 이 상태로 일상생활 하기가 힘드니, 적당히 알아서 먹겠다고 했다. 지금 신랑을 제외한 아들 둘, 그리고 나의 약봉지가 한가득 있다. 아이들은 콧물, 기침감기로 고생 중이고 나는 그놈의 소화장애가 도져 고생 중이다. 위염도 뭣도 아닌 기능성, 신경성 위장 장애라니. 나는 나 자신이 굉장히 수더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까보면 엄청 예민한 사람인가 보다. 어쩌면 예민을 수더분한 모습으로 감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는 아니라는데 몸이 온몸으로 말한다. 너 까칠해!!!!! 승질 드러워!!!!!!!!


 여하튼 나는 약에 매우 관대해졌다. 아이들도 조금 아프면 병원을 가고, 항생제가 필요하면 얼른 먹인다. 나도 약 안 먹고 병과 증상을 이겨내던 나도, 처방 가능한 약이라면 다 받아서 먹고 있다. 전문 의약품에 유산균, 비타민, 칼슘제등의 영양제를 포함하면 어마어마한 캡슐이 내 몸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의 콧물은 항생제 며칠이면 낫겠지만, 내 위장은 어찌하리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 참고로 기능성 위장장애는 완치가 없다던데. 기질적인 것이 커서 조절과 완화만이 정답이라 한다. 


운동양을 늘리고, 먹을 것을 더 조심할 수는 있는데 나도 모르게 아들 녀석들에게 꽥 소리 지르는 것은 조절이 안 돼서, 그래서 안 낫나 보다. 아들에게 꽥 소리 안 지를 수 있을까?    



새해엔 건강 챙겨요 우리 모두. 

이전 29화 정답지를 베낀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