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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30. 2022

날계란에 찍어 먹는 소 불고기

아빠가 생각나는 음식 - 2

오랜만에 불고기를 재었다. 불고기는 자주 먹는 음식 중 하나이지만 직접 재는 일은 흔치 않다. 양가의 어머님들께서 홈쇼핑에서 샀다고, 코스트코에서 샀다고 자주 나누어 주시기 때문이다. 한 요리하신다는 어머님들이지만 싸고 맛있고 편리하며 소분하여 냉동 보관이 가능한 홈쇼핑과 코스트코 불고기에는 혹하시는 모양이다. 맨날 파는 불고기는 너무 달고 기름기가 많다고 뭐라 하시면서도 꾸준히 구매하신다. 그래서 나의 냉동실에도 한 번, 두 번 먹을 정도의 불고기는 언제나 상비되어 있는 편인데 이번엔 불고기가 뚝 떨어져 정말 오랜만에 불고기용 소고기를 사서 직접 만들었다. 양념은 간단하다. 단맛과 짠맛을 입맛에 맞추고, 파, 마늘, 냉장고 사정에 따라 적당한 채소를 넣어주면 된다. 이번엔 양파와 새송이버섯, 말린 표고버섯이 들어갔다.


집에서 만든 불고기는 달지 않다.


어릴 땐 지금처럼 불고기가 흔하지 않았다. 싸게 많이 살 수 있는 곳이 없었을 것이다. 가끔 엄마가 불고깃감 소고기를 사다가 갖은 채소를 넣어 국물이 자박한 불고기 전골로 만들어 주었는데 아빠도 나도 언니들도 모두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아빠는 불고기 전골의 고기며 채소를 들기름 두른 날계란에 찍어드셨다. 그렇게 먹으면 뜨거운 것도 금방 식고, 짠맛도 중화되고, 계란과 들기름의 맛이 불고기의 맛을 한층 더 돋운다 하셨다. 나는 날계란을 못 먹는 아이였지만 아빠 따라서 불고기는 날계란에 찍어 먹었는데 맛이 참 좋았다. 맛이 없을 리가. 나중에 커서 스끼야끼 라는 날계란에 찍어먹는 불고기 전골과 비슷한  일본식 소고기 전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도 스끼야끼처럼 드신걸까. 아님 아빠 고유의 입맛이었을까.


불고기 전골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에 먹는 라면 사리였다. 엄마는 불고기에 당면을 넣지 않는 대신 마지막 남은 국물에 라면을 졸여 주셨는데 그것이 최고로 맛있는 별미라 배가 불러도 꼭 한 두 젓가락은 먹어야 했다. 식구가 다섯이었으니 라면 한 두 개 졸여서 조금씩 나누어 맛보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 아이들도 불고기를 먹을 때는 들기름 두른 날계란 노른자에 찍어 먹는다. 자고로 불고기 전골이란 식탁에서 보글보글 끓이며 떠먹어야 제 맛이지만 뜨거운 음식을 못 먹는 아이들의 식탁에 보글보글 전골은 그저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라 식판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식혀서 내어 준다. 밥을 다 먹은 후엔, 나는 라면 사리를 먹고 싶은데, 라면을 먹을 줄 알면 아이들은 밥과 고기를 먹지 않으니 (샤브샤브 칼국수집에 가면 국수부터 넣어야 해서 아이들과는 가지 않는다.) 라면 사리는 불고기를 남겨 두었다가 (애껴두었다가) 그다음 날이나 다 다음 날에 한 끼 별미로 먹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보통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반찬은 큰 환영을 받지 못하지만 라면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와 라면이다. 거기에 계란 노른자라니. 엄마 최고 소리가 나오는 아이들의 저녁. 나도 오랜만에 라면을 먹는다. 여기에 라면스프 조금 뿌리면 더 맛있는데, 후추도 못 먹는 아이들과의 식사는 참으로 제약이 많다.  


후루룩 쩝쩝 후루룩 쩝쩝 맛 좋은 라면.


얼마 전 읽은 인터넷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과 식사를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말들에 관한 것이었다. 뚱뚱함과 날씬함, 음식의 종류에 대해 편견을 가질 수 있는 말들을 삼가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섭식장애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쓴 칼럼이었다.  마지막 항목이 인상적이다. 아이들에게 배식받은 음식, 혹은 1인분에 해당하는 음식을 다 먹도록 강요하지 말 것. 당연히 받은 것, 먹어야 할 일정 양은 다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자세히 읽어보니 그렇게 하면 배가 부른 지 안 부른 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감각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매 끼니마다 꼭꼭 씹어 천천히 빨리 좀 먹으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꽥꽥 지르는 엄마로서, 뜨끔했던 구절이었다. 이 의사는 정녕 작고 마르고 입 짧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탈탈 털린 정신은 분석해 보았나 하는 생각으로 셀프 위로하려던 차,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토닥이던 아빠 목소리가 생각났다.


이 아기가 커서 불고기를 먹습니다. 아빠님.


아빠는 평생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신 분이다. 배부르게 먹으면, 아 배부르다, 기분 좋다. 잠이나 자자. 하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포만감을 어찌할 줄 모르고 동동 거리며 만족감보다는 불쾌감을 느끼시던 분. 그래서 다시는 과식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시던 분이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이라도 많이 먹고 체하는 것보다 버리게 되더라도 적당히 먹는 것이 낫다며 입 짧은 나를 토닥이던 분. 물론 아빠가 장을 봐서 직접 요리를 하고 설거지까지 하시던 분이 아니라 그렇게 적당히 먹는 것에 후하셨을 수도 있다. 아마 꼭꼭 씹어 천천히 빨리 좀 먹으라고 꽥꽥 거리는 나를 보셨으면 우리 막내딸 깡패가 다 되었다고 마음 아파하셨을 것이다.


엊그제 불고기에 날계란, 오늘 불고기 라면에 날계란을 먹으며 아빠를 떠올린다. 들기름을 두른 날계란이 함께 있다면, 아빠는 내가 만든 불고기도 맛있게 드셨을 것 같다.  아빠와 함께 불고기를 먹었다면 내가 꼭꼭 씹어 천천히 빨리 좀 먹으라고 꽥꽥거리기 전에 아이들을 토닥여 배부르면 그만 먹어도 된다고 식탁에서 내려 보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좀 편하게 먹으라고 아이들에게 테레비 틀어 주셨을 수도. 손자들은 배부르니 그만 먹어 좋고, 딸은 편하게 잘 먹는다 좋아하셨을 아빠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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