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 올레길 (17코스)

홀로 걷는 제주 섬(島) 437km, 27개 코스

by 밤안개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내 나이도 안 돼서 돌아가신 삼춘은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좋아하셨다.

삼춘이 가져온 뚜껑이 깨진 카세트로

줄이 늘어질 때까지 듣던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앞에 나는 서 있다.


궁금하다.

왜 삼춘은 먹고살만해지니까 떠났을까?

궁금하다.

삼춘은 왜 이 노래를 좋아했을까?


삼춘보다 더 오래 살고서

나는 이 노래가 좋아졌다.

배호란 가수가 스물아홉에

떠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삼춘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앞

고목을 붙잡고 무엇을 새기려 했을까?

너무나 막연했던 인생

너무나 안개 같던 인생

뒤돌아서면 떠날 것만 같았던

꿈과 희망들, 가난과 배고픔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에는

이슬비가 내린다.

너무 빨리 떠나버린

삼춘의 목소리도 흘러 내려온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 여기 왔나

고목만 말없이 쓸어안고 울다가 간

안개 낀 장충단 공원

(2025. 8. 10. 새벽 4시 협재)



2025년 9월 30일 화요일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어제저녁 지인이 선물로 주신 와인을 마셨더니 아침에 배가 아픕니다. 아무래도 고급스러운 와인은 제게 안 맞나 봅니다. 나오기 싫은 몸을 달래 가며 집을 나섭니다. ‘걷다 보면 금세 괜찮아질 거야.' 전기 줄 제비들이 고음의 소프라노음을 내고, 협재 바다는 듬직하게 도보자를 위로합니다.


"그봐, 군은 술은 안돼. 얼른 걸어야지. 기다리고 있을 길이 있지 않는가?" “걸어야죠. 길이 내게 해주는 인생의 지혜를 듣고, 다시 누군가에게 길 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야죠.”


길 위로 다시 나갑니다. "꼬닥꼬닥" 내 몸이 받쳐주는 만큼만 걸어갑니다.

06시 46분, 한림여자중학교 환승버스정류장 앞에서 291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외국인 한 분이 조깅을 하네요. 저는 버스에 올라 올레 17코스 시작 점 광령리로 향해 갑니다.


07시 40분, 당동산에서 하차했습니다. 눈앞에 올레 16코스 종점이자 17코스 시작점이 보입니다. 여기서 오늘의 길, 올레 17코스를 시작합니다. 제주시 방면으로 걸어갑니다. 힘이 생기나 보네요. 출출합니다. 아내가 싸준 떡으로 시장기를 좀 해소합니다.


무수천(無愁川)

'복잡한 인간사의 근심을 없애준다 ‘는 뜻의 이름을 지닌 개울을 지나갑니다. 한라산 장구목 서복계곡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25km를 흘러 외도동 앞바다까지 이어집니다. 이 개울은 제주시의 주요 수원이기도 합니다. 개울 옆길을 찍으려 해도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습니다. 하류쯤 가서 간신히 사진 몇 장을 건져냅니다.

제주시가 가까워진다는 것이 바로 느껴집니다. 비행기 소리와 멀리 보이는 드림타워가 도시 느낌을 가져줍니다. 이젠 도시적이라는 말이 낯서네요. 도평동을 지나갑니다.


섬의 내륙을 벗어나 바다를 향해 걸어갑니다. 바다는 늘 제게 평안함을 안겨 줍니다. 이 마을이름은 외도인가 봅니다. 아파트이름이 외도부영이네요. 제가 사는 협재에 비하면 여기는 큰 도시입니다. 수도권 조용한 외곽 도시의 느낌입니다.


월대천

월대천은 바다와 한라산 계곡물이 만나는 곳으로 사계절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흘러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며 270년 된 해송과 팽나무가 물 위로 휘늘어져 선경을 자아내는 곳입니다. 냇물에서는 은어들이 노닐고 달이 뜨면 운치가 있어 옛 선인들이 모여 맑은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구경하며 풍류를 즐긴 누대라는 의미로 ‘월대(月臺)’라 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알작지

‘알작지’라는 이름은 동그란 돌멩이라는 뜻의 '알'과 자갈을 의미하는 제주방언 '작지'가 결합된 의미입니다. 알작지 해변의 몽돌은 한라산 계곡에서 부서진 바위조각들이 오랜 세월 동안 무수천과 월대천을 따라 이동하면서 파도에 의해 동그랗게 다듬어진 것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자갈은 독특함과 아름 다음을 인정받아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방사탑

방사탑은 마을의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보이거나 지형이 터져서 허할 때 그것을 막기 위해 세웠던 돌탑을 말합니다. '거울대'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광령에서 출발한 지 2시간 10분이 지났습니다. (7.3km) 바다가 보이는 정자에서 준비해 온 사과를 먹습니다. 최고의 맛입니다.


제주 관광 오면 자연스럽게 방문하게 되는 이호테우해변을 향해 갑니다. 저기 멀리 빨간, 하얀 말 모양의 조형물이 보입니다. 현재 통과하는 마을은 현사 마을이고, 빨간색 등대가 서 있는 곳은 현사포구입니다. 아내랑 즐겨가던 산삼라면집도 보이네요. 참 반갑습니다.


이호테우해변

'이호테우'라는 이름은 이호동의 '이호'와 통나무를 엮어 만든 '테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해수면이 낮아지는 간조 때에는 넓은 백사장과 함께 원담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원담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제주의 전통 고기잡이 방식 중 하나입니다. 우리 동네 금능에서도 멋진 원담을 볼 수 있습니다. 이호테우해변은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저 절도 느껴지네요. 휴가철이 지났는데도 많은 분들이 이 해안가를 산책하고 있습니다.


도두동 추억의 거리

재미있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제주에 70, 80세대의 향수가 느껴지는 벽화, 조형물이 설치된 거리가 있었네요. 딱지치기, 말뚝 박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매일 땀 흘려가며 뛰 놀던 어린 시절 놀이들입니다. 가만히 걷기만 해도 히쭉 웃음이 나네요.


섬의 머리, 도두봉

11시 18분, 섬 머리 도두봉 공원으로 올라갑니다. 20분 정도 데크길을 올라왔습니다. 탁 트인 분지가 나오네요. 도두봉입니다. 이 작은 오름은 높이 67m, 둘레 1,090m로 화산재가 굳어져 형성된 응회암과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기생화산입니다. 오름 정상에서 제주공항이 내려다보입니다. 활주로를 따라 이제 막 항공기가 이륙하고, 반대쪽 바다에는 크루즈가 지나갑니다. 멋진 뷰가 있는 도두봉입니다.


도두 무지개 해안도로

이 해안도로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색 방어벽이 참 인상적입니다. 해안도로에 이렇게 관광객들이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거의 대부분 중국 인이네요. 최근 핫 플레이스인가 봅니다. 가끔 방어벽 위에 청동조형물이 눈에 띕니다. 이국적인 뷰입니다.


로렐라이 요정상

2009년 11월 28일 제주시는 독일 로렐라이시와 국제우호도시협약을 맺으며, 양 도시 간 우호증진을 위해 제주 돌하르방을 기증했고. 로렐라이시는 여기 로렐라이 요정을 기증하였습니다.


어영마을

어영공원인근 해안도로에는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어영'이란 이름은 '어염(漁鹽)'이 어영으로 변음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마을은 소금을 주로 생산해 냈습니다. 현무암 구덩이는 '소금빌레'라 불리 웁니다.


긴 해안도로입니다. 그동안 차로만 다니던 길을 끊임없이 걸어왔습니다. 도두 무지개해안도로, 이호테우해변, 어영마을에 이르는 길은 큰 도로를 낀 해안누리길입니다. 길은 길고, 쭉 곧게 이어져 지루합니다. 길을 걸으며 잠깐 졸기도 했습니다. 머리 위로 항공기가 굉음을 내고 지나갑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도로 표지판에 '용두암(龍頭岩)'이란 글씨가 보이네요. 슬슬 발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옵니다. 체력이 거의 방전상태입니다. 잠깐 쉬면서 글을 정리합니다.


용연구름다리를 건너갑니다. 이 다리는 짧지만 출렁거려서 스릴 만점입니다. 길들은 비교적 익숙한 도로입니다. 휴가내서 오면 지나게 되는 동문 시장 가는 길입니다. 맛있게 쥐치조림을 먹던 명물식당을 지나갑니다.


관덕정(觀德亭)

관덕정(觀德亭)은 조선시대 세워진 건물로 1448년 세종 30년에 제주 목사였던 신숙청에 의해 처음 창건되었습니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진 관덕정(觀德亭)은 보물 32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4시 02분, 드디어 오늘 최종목적지 김만덕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시작점 광령에서 07시 40분 출발했으니까 6시간 22분이 걸렸습니다. 상당히 지치네요. 19km의 장거리 올레길입니다.

올레 17코스는 내륙에서 바다로,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다중적인 체험이 가능한 코스였습니다. 한라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무수천으로 타고 내려와 외도바다로 흘러갑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라산의 큰 바위도 수많은 세월 닳고, 닳아서 알작지의 몽돌이 되었습니다. 바다에 이른 물줄기는 파도가 되어 해안을 때리기도 하고, 천연의 염전을 만들기도 합니다. 물이 만들어 낸 역사와 더불어 화산폭발로 생겨난 산봉우리는 섬의 머리, 도두(島頭) 봉우리가 되었습니다. 섬 머리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를 잊지 않고 마을에 벽화와 조형물을 내어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마을 곳곳에 ‘추억’이라는 흔적을 새겨 주었습니다. 올레 17코스는 잊지 못하는 인연을 맺어준 멋진 길입니다. 우리 부부가 제주 하면 떠올렸던 곳이 용두암과 이호테우해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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