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전 증후군'에서부터 꼬리를 문 생각의 조각들
이번 주 내내 제대로 한 일이 없다. 해야 하는 일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일까지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릴 정도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쉬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유 없이 우울하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누워서 다이어리에 써둔 일기를 읽었는데,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왠지 익숙하다 했던 이 기분을 정확히 두 달 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두 달 전 이맘때도 지금도 월경(예정일) 전 일주일 즈음이었다.
월경전 증후군(PMS)은 배란기부터 월경이 시작되기 전 약 7일~14일 경에 정신적, 행동적, 신체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월경의 시작과 함께 사라진다. 국제 질병분류에 따르면 ‘경미한 정신장애’, ‘더부룩함’, ‘체중 증가’, ‘유방 압통’, ‘근육통’, ‘집중력’ 저하’, ‘식욕 저하’ 중 한 개 이상을 겪으며 해당 증상이 월경 시작 후 사라진다면 이를 월경전 증후군으로 진단하고 있다. 월경전 증후군이 심할 경우 정신적 질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월경에 대한 태도(월경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는지, 성가신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여부), 흡연, 평상시 스트레스 등이 월경전 증후군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월경전 증후군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호르몬’이다. 월경주기를 조절하는 데는 4가지 호르몬이 –에스트로겐, 프로 게스트론, 여포 자극 호르몬(FSH), 황체형성 호르몬(LH)-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호르몬의 작용으로 여성은 매달 월경을 하고, 월경 전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 월경전 증후군의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우울증 역시 도파민·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등 호르몬이 줄어 발생하는 병이다. 이처럼 호르몬은 몸 곳곳을 흐르면서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요 며칠 정신적으로 지쳤다고 느낀 게 호르몬 때문이라면, 답이 생각보다 간단해서 후련했다. 괜히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내 성격을 탓해보기도 하고 주변 환경을 탓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호르몬 때문이라니.
사람은 살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만큼 부정적인 생각들도 많이 한다. 사소한 걱정부터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와 같이 그 생각의 깊이도 다양하다. 때로는 그 생각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더 답답하기도 하고, 그런 답답함은 종종 또 다른 부정적인 감정을 낳는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복잡 미묘한-슬프면서 불안하고 답답하며 우울한-생각들이 호르몬 때문이었다고 하면 어떤가? 사람은 호르몬의 노예일 뿐이라는 단편적인 결론을 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심리학자 Guy Winch가 Ted 강연 「Why we all need practice emotional first aid」에서 말했듯이, 현대인은 ‘정서적인 위생’을 기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상처가 나면 밴드를 붙이든 꼬매든 바로 조치를 취하지만,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는 그것을 방치하거나 나아가 오히려 그것을 후벼 파며 자신을 더욱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이쯤에서 월경전 증후군이 월경을 시작하고 나서 끝나는 데에는 심리적인 영향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요 며칠 힘이 없었던 이유가 생리를 시작하려고 그랬군.’하며 월경을 시작하고서야 월경전 증후군을 인식하고, 그동안 괜히 그런다고 생각했던 증상들의 원인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이유 없이 쳐지거나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드는 것을 '호르몬 때문일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정서적 위생 관념’을 터득했다. 매달 월경 주기가 가까워질 때 또다시 지금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나를 계속 괴롭히지 않고 지금보다는 마음 편히 쉬게 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https://www.ted.com/talks/guy_winch_the_case_for_emotional_hygiene#t-996390
Guy Winch의 Ted 강연 「Why we all need practice emotional first aid」의 링크를 첨부합니다. 사실 앞선 글에서는 강연의 주요 내용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강연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이 강연은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심리적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시간 날 때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참고 문헌>
정금숙, 「여대생의 월경전 증후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서남대학교, 2012.
최지원, 「성인 여성의 월경전 증후군과 섭식, 스트레스 및 우울장애의 관련성」, 성신여자대학교 생애복지대학원, 2013.
한혜율, 「여성 우울증의 이해와 치유에 관한 연구」, 광운대학교 정보복지대학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