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지 않은데
같지 않을까 봐
"생일 선물 뭐 필요해?"라는 연인의 말은 내재된 나의 서운함 버튼 위로 난데없이 착지했다. '필요'라는 단어는 생일 선물을 풀어야만 하는 숙제로 여기는 듯 들렸다. 뒷산의 맑은 공기를 준대도,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명 당황했을 거지만, 나와의 추억을 떠올려 고심했다면 아주 고맙게 받았을 텐데 말이야!
모든 감각은 그 말의 의중을 파악하기로 분주해졌다. 예전, 같은 질문에는 남의 취향에 어떻게든 들어맞아 보려는 모습이 안쓰러워 콕 집어 말해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 필기 다 했지? 나 노트 좀 보여줘."하고 내가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노트를 집어가는 것 같았다. 사실 당연하지도, 정답이랄 것도 없는 일이다. 그것 좀 물어봤기로서니 문제도 아니지. 물론 그도 진심으로 내 필요를 챙기고 싶어 물었을 테다. 나는 풀지도 못할 문제를 내고 그 답으로 깜짝 선물에 성의 표시까지 바라는 악덕한 퀴즈 중독자인 걸까.
원하는 건 가만히 귀 기울이면 다가와 철썩이는 파도 소리 같은 마음, 나를 생각했을 너를 생각하는 설렘이었다. 그냥 그랬다. 예상치 못한 파도는 쑥 밀려들어 와 더 커다란 자욱으로 남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선물이라도 마음대로 고르는 편이다. '마음대로'가 '아무렇게나'라는 뜻은 아니듯 또 나는 수백 번 고민한다. 필요한 게 뭘까?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했던가? 저게 더 나을까? 내 마음이 너와 같지 않을까 봐서다.
마음은 똑같이 배어나는 트레이싱지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애초에 같다고 할 수 없기도 하다. 나의 진심 좀 인정해줬으면 하는 아집이었다. 마침 원하는 것을 대놓고 물어보든 상대를 떠올리며 알아서 하는 선택이든 간에 주는 것만으로 주는 것은 값진 행위다. 바로 그 사람에게만 필요가 있다는 것 또 고르고 골라 주고 싶은 것을 '진심'이라는 상자 안에 잘 담아 전하면 더할 나위 없다. 사실 마음을 쓰다 보면 알게 된다. 그러니 상자는 무엇이나 담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나는 믿어야 한다. 줄 수 없는 것까지도 줄 수 있는 상자라고. 모두의 상자가 그렇다고.
선물과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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