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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독야독

『무지의 즐거움』 독후감

2025년 6월의 독서

by 야간선비
한 줄 소감 :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아는 게 늘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


『무지의 즐거움』,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2024


이 책은 몇 달 전에 읽은 『곤란한 결혼』의 저자 우치다 다쓰루가 쓴 책이다. 스스로를 무도가이자 옛 현인들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전도자로 소개하는 그는 다방면의 주제에 대해 많은 저작들을 남겨오고 있다. 그의 사고방식과 글쓰기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의 다른 저작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읽은 책도 완전 대만족이다.


이 책은 번역가 박동섭이 준비한 질문에 대해 저자 우치다 다쓰루가 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움이라는 주제에 관한 갖가지 질문들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친절하고 쉽게 들려주는데,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배움에 임해야 하는지, 배움의 토대가 되는 읽기와 쓰기 등은 무엇인지, 진정한 배움과 지성이란 무엇인지, 배움으로 인해서 체득하게 되는 경지는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정말 놀랍고 따뜻하다.


배움이란 것은 단순히 지식량을 늘려나가는 것이 아니다. 배움은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내가 이해 가능하고 공감 가능한 것’이 아닌 ‘내가 모르고 내 생각과 다른 것’을 찾고, 그것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일단 지닌 채로 삶을 사는 것이다. 배움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표정과 말투와 옷 입는 법까지 전부 바꿔버리는 인간적 쇄신을 이루는 것이며, 자아와 정체성을 확립한답시고 한 곳에 주저앉지 않고 끝없이 그 쇄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쇄신의 과정은 목적지를 설정하거나 현재 위치를 들여다보거나 하지 않고, 계산과 판단을 모두 버린 채 그저 가야 할 길을 걸어가면서, 그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움을 통해 함양되는 지성은 주변 사람들을 계몽시킨다는 생각으로 펼치는 일방적인 퍼포먼스로 주변을 얼어붙게 하는 것이 아닌,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집단의 지적 퍼포먼스를 활성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뭐라고 콕 집어 설명할 순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배웠다. 그리고 나는 확실히 이 책을 읽지 않았던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래는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배우는 태도>

- 판에 박은 일상

항상 같은 일상을 유지하고 반복하면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스승의 범위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내가 생각한 모든 조건을 충족한 사람에게서만 배우려는 태도’가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갖가지 식견을 배우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 스승의 필요성과 제자의 태도

100% 독창적인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무언가를 100% 이해하는 것 또한 어렵다. 당장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부터 100% 나의 오리지널리티가 아니라 ‘타자의 말’을 길어와서 쓰는 것이다. 독창성에 구애받지 않고, 타인의 생각을 빌려오고 전달하는 ‘조술자’의 역할을 자처할 때 더욱 자유로워지고 창의적이게 된다. 조술자의 역할을 택해야지만 내가 모르는 것들도 자유로이 논할 수 있다. 독창성이라는 것은 당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충분히 지나서 ‘그 사람 정말 독창적이었어’라고 사후에 반추되는 것이다.

과학적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검토와 반증 가능한 것이다. ‘내 생각이 진리이며, 누가 뭐라 해도 이 진리는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주장은 그것이 설령 진리라고 하여도 과학적이지 않다. 그러나 ‘내 생각은 틀렸을 수도 있으며 사후 감정을 기다린다’라는 주장은 그것이 진리가 아닐지라도 과학적이다.


<배움의 밑천>

- 무방비 독서

‘무엇이 쓰여 있는지 예상된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자신이 잘 모르는 내용은 무의식적으로 건너뛰게 된다. 이런 것은 독서가 아니다. ‘앎의 자산 목록’을 늘려가는 독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책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읽어야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 내 생각과는 다른 것을 마킹하며 읽어야 한다.


- 읽기 : 지적 폐활량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견디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 쓰기 : 나만의 보이스

‘보이스’라는 것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명확하게 타인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이 발생한 시점에의 ‘성운 상태’를 포착하는 것이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도 되고, 했던 말을 취소해도 된다. 논리성, 일관성, 타당성, 구조성을 지켜야 한다는 제약에 갇히면 자유자재로 쓸 수 없게 된다. 수정의 여지가 있는 문체야말로 자유롭다. 보이스가 생생하고 리드미컬하면, 독자는 흐름에 휘말려 ‘정신을 차려보니 끝까지 읽고 말았다’는 일이 일어나게 되며, 독자의 머리가 아니라 몸에 스며들게 된다.


- 기억의 저장 : 목에 걸린 생선가시

뭔가를 이해하기 힘들 때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 이해할 수 없는 상태는 이해하는 상태만큼 좋은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을 늘리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의 목록을 늘리는 것이 지적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 뭔가를 술술 설명하는 사람보다, 의아해하고 놀라는 사람이 더 성장한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가득 찬 채로 살아가면, 어느 순간 ‘아하, 그때의 그게 그것이구나’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 외국어 공부 : 새로운 세계

모국어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외국어 공부의 기쁨이다.


<배움의 즐거움>

- 지성의 작동

‘지성’이란 집단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지성인’은 그 사람 덕분에 주변 사람의 지성이 활성화되고, 그 덕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집단의 지적 퍼포먼스를 향상해 나가는 사람. 머리가 좋고 달변이지만 그 사람이 나타나면 주변이 조용해지고 사고가 정지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사람은 지성인이 아니다.

지성이 가득한 책이란 독자의 심신에 직접 닿아서 지적 흥분 상태(뭔가를 하고 싶어 진다거나 두근두근 한다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다거나 등)를 일으키는 책이다. 쿨한 태도를 유지하는 책이 아니라, 독자의 소매를 붙잡고 좀처럼 놔주지 않는 책이야말로 지적인 책이다.


- 무도와 수행

타인을 비판하거나 우열을 가리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논쟁과 비판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남의 말을 비판만 해야 할 것이다. 논쟁을 이겨서 학문적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없다. 스스로 또는 타인으로부터 반증을 당하여 나의 기존 가설을 수정하고 정정하여 자기 쇄신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학문과 무도는 이러한 점에서 같다.

제자를 가르친다는 것은 목적지를 가리키는 것이 전부다. 사제관계는 스승이 제자보다 강하거나 빠르다고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실력차이가 존재해야 관계가 성립한다고 생각하면, 스승은 어떻게든 제자가 스승보다 나아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자신을 넘어서는 제자를 기르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다.


<왜곡된 배움>

- 진정한 자아를 확립하지 말자

‘사별삼일, 즉갱괄목상대’라는 말이 있다. 선비는 모름지기 사흘을 떨어져 있다 만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 ‘진정한 자기’ 같은 것에 주저앉고 매달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자기다움에 매달려서 큰 목소리로 확실하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더듬거리며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상정하고 그것을 평생 연기하는 것은 답답하다. 진정한 나 같은 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똑같다면 살아갈 보람이 없다. 틀과 캐릭터는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다. 그걸 벗어던지는 순간 사람은 무방비 상태가 되는데, 이때 사람은 성장하며, 그 성장을 보호하고 축복해줘야 한다.


- 지적 성장 :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머릿속의 지식과 정보량이 증가한 상태라면, 즉 그 사람은 똑같고 내용의 양만 증가했다면 그것은 배움이 아니다. 배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만큼 사람이 바뀌는 일이다. 표정, 목소리, 행동, 옷을 여미는 법까지 싹 바뀐다. 부족한 것을 메우는 것은 배움이 아니라 보충일 뿐이다. 배움은 인간적 쇄신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 쓸모 있는 학문

쓸모라는 것은 지역한정, 기간한정의 개념이다. 실학으로 각광받는 학문과 전공은 시대의 주요 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바뀔 뿐이다.


<배움의 소임>

- 학술의 본질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1밀리미터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학술의 목적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확실히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고 과정에 몸을 맡기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학술의 태도이다.


- 개성은 설명에서 발현한다

지성은 어려운 개념이나 이론을 말할 때가 아니라 복잡하고 까다로운 이야기를 알기 쉽게 설명할 때 그 독창성이 제대로 발휘된다.


<배움의 결실>

- 비유

비유는 구체성을 부여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지성의 기어를 한 단 올리는 것이다.


-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높은 이상으로서 항상 미완으로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메시아가 영원히 오지 않더라도 올 것이라 생각하며 삶을 꾸리는 메시아니즘이 민주주의에서도 작동한다.


- 무도적 사고 : 무심의 경지

이기려 하면 지고, 강해지려 하면 약해진다. 자아, 주체, 정체성 같은 것은 수행을 방해한다. 아직 기호적으로 분절되지 않은 세계, 질서가 확립되지 않은 성운의 상태‘에 머물러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무도적 방식이다. 계산과 판단을 버리고 무심하게 행동하는 것,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길을 걸어가는 것, 길의 종착지나 현재 위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것 자체를 보람 있게 여기는 것이 무도적 사고이다.


- 지성과 종교의 연관성 : ‘큰 것’을 경외하는 마음

도덕경에는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희성 대상무형(큰 사각은 귀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완성까지 긴 시간이 걸리며 큰 소리는 들을 수 없으며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는 구절이 있다. 내 수중의 잣대로는 계량할 수 없어서 큰지 작은지조차 모를 정도로 큰 것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세계의 무한함을 실감하는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다.


<평생 배움의 길>

- 나의 직감을 따르는 데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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