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의 독서
한 줄 소감 :
아무것도 아닌 소재를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으로 만드는 천부적인 문장력
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책을 전처럼 많이 펼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뭐든 어떻게든 부담없이 읽으려고 두께가 얇은 책을 책장에서 찾다가 골라든 책이 이 책이다. 책의 겉표지를 펼쳐보니 안쪽에 2017년 10월 14일에 구매했다고 적혀 있다. 제대로 읽었던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이 책을 8년 전에 사놓고서는 이제서야 읽은 것이다. 책은 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놓은 책들 중에 읽는 것이라고 했던 김영하 작가의 재치 있는 말이 떠오른다.
이 책은 『향수』로 유명한 독일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1987년작 단편 소설이다. 주인공은 조나단 노엘이라는 이름의 노인인데, 평생을 자신만의 생활 패턴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작은 여관방에서 일평생을 살아온 그는 근처 은행에서 경비원 일을 하고, 작은 봉급으로 빵과 치즈와 와인을 사 먹고, 몇 권의 책을 읽으며 행복해한다. 혼란스러운 유년기와 불안정한 인간관계를 겪으며 자란 그는 파리에 자리 잡은 후 폐쇄적이고도 강박적인 인생을 살면서 별다른 것을 도모하지도, 색다른 일을 겪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 누구와도 이렇다 할 연을 맺지 않은 채 홀로 고독한 평온을 사수하며 살아온 그는 자신만의 작은 세상에서 매일매일을 똑같이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는 열심히 모아 온 돈으로 자신이 묵는 여관방을 아예 매수해서는 곧 자신의 월세방을 온전히 자기의 소유로 만들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 여관방의 문을 열고 나온 그의 앞에 웬 납회색 비둘기 한 마리가 여관 복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 비둘기를 보며 까무러치게 놀라게 되고, 비둘기를 마주한 이후 평화롭고 단조롭던 인생의 모든 면면들이 갑자기 하나둘씩 꼬이기 시작한다...
작품을 읽으며 나는 독서를 대단히 즐겼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쓴 쥐스킨트를 질투하기까지 했다. 글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시샘이 나 버린 것이다. 소설의 얼개는 아주 간단하다. 하나, 극도로 폐쇄적이고도 방어적인 인생을 사는 노인이 있다. 둘, 그 노인이 비둘기라는 평범하고도 흔한 새를 어쩌다 마주하게 된다. 이 두 가지의 조건, 단 두 개의 설정값을 가지고 쥐스킨트는 이토록 엄청난 작품을 써 내려간 것이다...
극도로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인물에게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만났다면 절대 말이 통하지 않을, 평범하지 않은 인생에 타협 불가능한 사고방식을 가진 주인공을 설정해 놓고는, 쥐스킨트는 독자로 하여금 이 주인공에 완전히 감정이입하게끔 만들어버린다. 대관절 비둘기를 마주한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런데,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아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기보다는, 이 노인이라면 필시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달까. 아니, 더 나아가서, 나 또한 이 노인과 똑같은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게 된달까... 이것은 작가에 의해 논리적으로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의해 서서히 물드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토록 섬세하고도 상세한 심리 묘사를, 어찌 이렇게 건조한 듯하면서도 풍미 가득한 문체를, 어찌하면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꽉 들어찬 전개를 가능케 한단 말인가?
쥐스킨트는 마치 반도체의 회로처럼 평소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인간심리의 작동방식과 감정의 흐름을, 그 치밀하고도 복잡하고도 미묘하고도 순간적인 그 작용의 순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원리'를 알고 있는 작가. 마치 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 설계도를 몰래 손에 넣은 듯이, 쥐스킨트는 그 모든 것들을 낱낱이 알고 있다. 대단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기가 막힌 소재를 사용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욱 빛나는 작품이다. 돌멩이처럼 흔한 소재로 황금과도 같은 작품이 탄생하였으니, 이것은 연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