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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진 Sep 27. 2024

명절, 풍경

이천이십사년 구월 이십칠일

실시간으로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명절이 되면 친척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문화를 좋아했다.

내가 어릴 적 시골에 살았을 때 우리 집은 명절 음식을 만들고, 성묘를 하고, 큰집 작은집 돌아다니며 차례를 지냈다. 아침 일찍부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을 뵙고, 절을 하면 용돈을 받고, 먼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색한 공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길고 긴 명절 아침 시간을 보냈다. 어린 나에게 그런 시간들은 특별했고 즐거웠다.

설에는 송편을 빚고, 추석에는 만두를 만드는 게 당연했다. 할머니가 해준 떡과 식혜를 사랑했으며, 모두 모여 앉아 전을 부치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촌 오빠들과 노는 것도 재밌었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것도 좋았고, 평소에 가지 않는 다른 집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설 특집, 추석특집 프로그램도 빠짐없이 본방사수를 할 정도로 애정 했다.

어른들은 명절이 싫었겠지만, 아이였던 나는 명절이 정말 좋았다.


이제 다시는 그런 명절 풍경을 볼 수 없게 됐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으며, 어른들은 고생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기 시작했다. 세대교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동안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명절이 재미 없어졌다.


이제는 명절 연휴 기간을 이용해 사람들이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이해한다. 나도 그러고 싶으니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명절은 명절처럼 지내고 싶다. 서로 거의 말은 안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친척들 얼굴도 좀 보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나 싶다.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번 추석은 유난히 더웠다. 긴팔을 입을지 반팔을 입을지 고민했던 추석마저 사라졌다. 반팔을 입어도 더운 추석이라니. 지구와 발맞춰 걷기 참 벅차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건 큰엄마의 사촌 오빠 자랑 늘어놓기. 엄마들은 자식 자랑을 안 하면 안 되는 병이 있나 보다. 어른들은 잘나가는 내 자식을 자랑하기 위해 애쓴다. 자식 얘기 아니면 할 얘기가 없나 보다. 우리애가 잘 나간다는 걸 그렇게 어필하고 싶을까.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한결같이 매년 내 자식 자랑하는 어른들을 보면 왜 저러나 싶다. 잘나가고 못 나가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럴 거면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하지를 마세요. 무사히 매년 얼굴 마주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가끔 친척들을 보면 얼굴과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같다.

그래서 잘나가고 싶다. 우리 엄마 아빠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서. 이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스물다섯 살. 만으로 스물네 살. 엄마가 결혼했던 나이가 되니 외할머니로부터 좋은 남자 만나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정말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였다. 내가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들을 나이가 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명절 잔소리 듣기 싫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안 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가 당사자가 되어보니 저절로 납득 완료. 아, 그래서 사촌 언니 오빠들이 안 오는 거였구나.


일 년, 한 달, 일주일, 하루.

순식간에 바뀌는 세상 한가운데서 깨달음을 얻는 중.


내 세상은 조금만 천천히 바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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