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Leave
B의 무논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견디기 어려워졌고, B가 다음 계약을 따내기 위해 A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그들은 함께 진행해야 할 업무에서 나를 의도적으로 배제했고,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탠드업 미팅에서 매니저가 나에게 진행 상황을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개짓거리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A의 계약이 끝나기 전에 매니저와 직접 대화를 나눴다. 결국 A는 재계약에 실패했다. 이후 B는 나를 의식하는 듯했지만, 속에 숨겨진 야망과 드러운 인성은 똑같았다. B는 특수한 상황 덕에 어렵지 않게 다음 계약을 따냈고, 1년 더 일할 기회를 얻었다.
원하는 대로 계약 연장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B는 여전히 나를 경쟁자로 여겼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제자리인 비참한 실력을 숨기기 위해, 아는 척이나 하고 살살 눈치를 살피며 야비하게 기회를 엿보다 나의 아이디어를 슬그머니 가져다가 본인의 디자인에 반영하는 비열한 짓거리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공개 세션에서 내가 결과물을 발표하려는 타이밍에 갑작스레 궤변을 늘어놓아 흐름을 끊는 둥 갖가지 개수작들은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매일 강제적으로 들어야 하는 B의 궤변과 부적절한 행동이 큰 스트레스가 되었고, B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짜증스러웠다. 심지어 세션 중에는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혼자 소리 지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서 머리카락도 점점 빠져갔다.
사장의 태도도 문제였다. B는 바닥에 붙어있는 자신의 실력을 알기에, 생존을 위해 사장의 비위를 철저히 맞추는 방향으로 노선을 정했다. 나는 B의 무지함 때문에 같이 전문적인 프로젝트를 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사장은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는 모두 회사의 자산이라는 이유로 내 의견을 묵살했다. 그러한 사장의 모습은 내가 수년간 알고 있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나는 디자이너로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더 이상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독일까지 8000km넘게 날아온 이유는 절대 이런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차곡차곡 모은 휴가와 오버타임을 활용해 몇 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날 준비를 했다. 마침 회사의 재정 상태도 악화된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더 이상 미룰 이유는 없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빠져나간 머리카락이나 돌보겠다고 결심했다. 실직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내가 만든 상황과 불경기 덕분에 그럴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장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결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노티스 기간 동안 모아둔 휴가와 오버타임을 모두 쓰겠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추가 비용을 제안하며 몇일 더 일해달라고 했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레퍼런스 레터를 받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모든 절차가 끝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떠난 지 몇 달 후, B의 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