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겨울이었다. 엄마가 계단에서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부러지는 바람에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퇴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11월 어느 날, 드디어 엄마가 퇴원하셨다. 막내라는 이유로 일을 하면서 엄마의 간병까지 도맡아 하다 보니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엄마 퇴원 기념으로 미용실에서 하루 종일 대공사를 했다.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언니가 선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언니가 다니는 헬스장에 언니랑 친한, 같은 동에 사시는 할머니가 계신데 얘기하다 보니 각자 집에 결혼 안 한 '똥차'가 하나씩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의기투합해 똥차를 치우기로 했단다. 참으로 고마운 핏줄이 아닐 수 없다. 지 동생을 똥차로 소개하다니... 나는 선을 선뜻 받아들였다. 실로 오랜만의 선이었다. 서른 살이 되니 신기하게도 밀물처럼 들어오던 선 자리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기댄 없었다. '밥이나 얻어먹고 와야지.' 하며, 언제나 그랬듯이 최선을 다해 꽃단장을 하고 똥차는 집을 나섰다.
자신이 상품이 된 것 같아 선이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선이 그것도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참 즐거웠다. 과장해서 말하면, 백번 가까이 선을 봤지만 직업이 겹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사는 얘기만 들어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물론 '애프터'란 것이 이성으로서 끌려야 하는 화학작용인데 나의 그런 선에 대한 호감도가 애프터로 이어지는 성공률엔 기여하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 남자가 괜찮아서 다시 만나고 싶다 하면 그 남자는 내가 싫다고 하고, 아니면 그 반대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내 철칙은 맘에 들지 않아도 세 번은 만나자였지만 세 번조차 만나기 힘든 엇갈린 인연들뿐이었다.
그날은 12월 3일이었다. 삼대 구 년 만에 들어온 선인데 나는 하나도 신이 나지 않고 만나기도 전에 벌써 피곤이 몰려왔다. 약속 장소로 가면서 상대방 남자한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민트색 재킷을 입고 들어갈 거니까 들어가면 손 들어주세요"하고 퉁명스럽게 전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은 그 지역 '선의 메카'여서 선을 보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리고 들어가면 꼭 종업원을 시켜 '아무개 씨!' 하고 방송을 해서 파트너를 찾았다. '나 오늘 이런 사람하고 선 봐요' 하고 광고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난 그게 너무 부끄럽고 어색해서 그 남자분에게 미리 일러둔 것이다. 최대한 타인의 주목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들어가니 왼쪽 창가 쪽에 앉은 어떤 남자가 의자에 용수철이라도 달려 있는 듯 시원하게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닌가! 차라리 방송을 할걸... 아 쪽팔려... 다 쳐다봤다.
마음을 진정하고 음식을 시켰다. 그러고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창피함은 잊고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남자는 시골 이장님 패션에, 크지 않은 키, 호리호리한 몸매, 코가 아주 잘 생긴 호남형에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저울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저울?? 너무 신기했다. 또 저울에 대해 질문을 쏟아내자 남자는 정성껏 대답해주었다. 그 남자는 긴장한 탓인지 맥락 없는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특히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친구들 이야기를 눈치 없이 쏟아냈다. 친구들은 경찰관, 소방관, 회사원 등 직업군도 다양해서 그 직업들의 애환을 다 들어야 했다.
그날 애프터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남자와는 나의 목표였던 세 번 만났다. 그러면서 그도 음악과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어릴 적 즐겨 보던 전쟁 드라마 <머나먼 정글>의 ost였던 Rolling Stones의 Paint it Black 그리고 남자들은 잘 모르는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영화 <귀여운 반항아>와 주제가였던 Ricchi E Poveri의 Sara Perche Ti Amo를 아는 그를 보며 너무 반가워 하마터면 손을 덥석 잡을 뻔했다. 용수철 그 남자와는 8개월 동안 매일 같이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개콘을 따라 하면서 개그 배틀을 하며 뜨겁게 연애하다 결혼까지 해버렸다. 선을 본 남자들의 지역은 다양했고 미국 교포도 두 명 만났지만 정작 내 반쪽은 내가 사는 아파트 1km 반경 내에 살고 있었다. 반쪽을 찾는데 지쳤던 나는 '반쪽을 만나기만 해 봐. 어딨다 이제 왔냐고 뺨을 때려줘야지'하고 종종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반쪽을 만났을 땐 그런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행여나 내 반쪽이 날아갈까 손만 꼭 잡고 다녔다.
겨울은 노처녀에겐 청첩장이 쏟아지는 봄보다 잔인해서 그 쓸쓸함의 늪을 헤쳐 나오는 방법은 치맥과 날밤 새는 쇼핑이었다. 그러나 그해 겨울, 어떤 칼바람에도 맞설 수 있었고, 시끌벅쩍한 크리스마스도 두렵지 않았던 것은 내 인생 마지막 선에서 만난 반쪽과의 사랑 때문이다. 이젠 내게 겨울은 사랑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