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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Apr 20. 2022

엔도 슈사쿠, 그와 함께 떠난 책들 1

'침묵', '깊은 강' 서평

6년 전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세례를 받고 나서 성당 문화도 낯설었지만, 성당에 가서 자주 듣는 ‘죄인’이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왜 자꾸 나보고 죄인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시니까 나를 원래 이렇게 만드신 분도 하느님이실 것이고 그렇다면 그 책임도 하느님께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나보고 죄인이라고 하니 억울한 생각이 들어 그 말이 듣기가 싫었다.

나는 청개구리 같은 사람이다. 누군가 무언가를 시키면 실행력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참으며 하는 법은 거의 없다. 또 권위적인 사람들의 강압적인 요구와 지시에는 반발심이 강하게 일어난다. 그래서인지 무섭고 복종을 요구하는 것 같은 구약의 하느님과 가톨릭의 분위기에 새 신자가 된 후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엔도 슈사쿠’라는 위대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엔도 슈사쿠는 192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3세 때 만주 다롄으로 떠났다가 7년 후 부모가 이혼하면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이모 집에서 살게 되었고 가톨릭 신자였던 이모의 영향으로 1935년 일가족이 세례성사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게이오 대학 문학부에서 수학하고 1950년에 전후 일본 최초의 유학생으로 프랑스 리옹 가톨릭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 무렵부터 소설가가 되기로 했으나 건강 문제로 1953년에 귀국했다.

 1955년에 ‘하얀 사람’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고 첫 단편집 ‘하얀 사람, 노란 사람’을 출간했다. ‘바다와 독약’으로 신초샤 문학상,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받았다. 1960년에 폐결핵이 재발해 대수술을 세 번 받았다. 장편 ‘침묵’으로 다니자키 주니치로 상을 받으면서 명실공히 일본의 대표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그레이엄 그린의 강력한 지지로 한때 이 ‘침묵’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끝내 수상이 좌절되었다. 1971년에 로마 교황청에서 기사 훈장을 받았다. 1981년부터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이 악화하면서도 ‘여자의 일생’, ‘스캔들’ 등을 꾸준히 출간했다. 1992년에는 ‘깊은 강’ 초고를 완성했으나 이듬해 신장병으로 복막투석 수술을 받았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후 1993년에 마지막 장편소설로 ‘깊은 강’을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마이니치 예술상을 받고 영국 등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6년 폐렴에 의한 호흡부전으로 사망했으며 생전의 뜻에 따라 ‘침묵’과 ‘깊은 강’ 두 권이 관 속에 넣어졌다.      

사진 : 영화 '사일런스' 중, 크리스천 투데이

 먼저 ‘침묵’이라는 작품을 읽고 나서 엔도 슈사쿠가 관에 넣어달라고 한 작품이 ‘침묵’과 ‘깊은 강’ 임을 알고 두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침묵’의 줄거리는 17세기 교황청에 일본으로 선교를 나간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페레이라 크리스트반 신부가 배교를 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그는 일본에서 33년을 체류하던 주교였다. 신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박해를 받으면서도 잠복해서 선교를 계속해 온 불굴의 신념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로드리고 신부는 분개한다. 자신의 은사였던 페레이라 신부가 이교도에게 굴종해 배교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두 젊은 신부, 프랜시스 가르페와 세바스티앙 로드리고는 일본에 건너가 사건의 진상을 직접 확인하기로 마음먹는다.

두 신부는 온갖 고초를 겪으며 신자들을 만나지만 두 신부와 신자들이 일본 관리들에게 발각이 되면서 평신도들에 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이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 고문은 일본에 비하면 유치원생 수준이었다) 그런데 일본 관리들은 농민 신자들이 배교를 해도 그대로 죽여버린다. 그 이유는 신부 한 사람의 배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신자들의 믿음의 싹을 없애고 싶어 했고 로드리고 신부가 자신 때문에 죄 없는 신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배교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마침내 로드리고 신부는 배교하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스승이었던 페레이라 신부도 이러한 이유로 배교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후 로드리고 신부는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 후 일본 관리의 강압으로 스님으로 개종해서 순교한 자의 부인과 결혼했음을 확인한 뒤, 자신도 '오카다 산에몬'이라는 이름을 받고 배교한 사제로서 일본에서 남은 생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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