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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Nov 11. 2024

유재하, 영원히 기억될 우리의 여름

 이승과 저승이 연결되는 날 ‘망자의 날’은 애니메이션 「코코」(2017, 픽사)의 특별한 소재다. 이날 주인공 미겔의 가족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족의 사진과 음식으로 제단을 꾸미고 그분들을 추모한다. 같은 시간 저승에 있는 미겔의 돌아가신 가족들은 저승과 이승을 잇는 다리를 건너 가족들을 살피러 갈 생각에 바쁘다. 그러나 이승에서 자신을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으면 망자는 저승에서 마지막 죽음, 소멸을 겪는다. 애니메이션 속 가수였던 미겔의 증조할아버지 헥토르는 자신을 기억하는 딸이 노환으로 점차 기억을 잃어가면서 영원한 소멸의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우리나라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저승에서 영원한 소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수들이 여럿 있다. 팬들은 배호, 김정호, 김현식과 그들의 노래를 잊지 않고 있다. 유재하柳在夏(1962년 6월 6일~1987년 11월 1일) 또한 그런 가수일 것이다.      




 유재하는 탄광을 경영하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아코디언, 첼로, 피아노, 기타 등 다양한 악기 연주에 능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룹 ‘어니언스’에 빠졌고 곧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한양대 작곡과에 입학하여 클래식 음악에 발을 들여놓는다. 

 재학 중에 그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연주자로 활동했지만, 대중음악은 딴따라라서 안된다는 학교 측의 반대로 두 달 후 그만두어야 했다. 이때 그의 곡 ‘사랑하기 때문에’가 조용필 7집에 수록된다. 졸업 후 ‘김현식과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키보드 연주자로 활약했지만, 자신의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그룹 활동을 그만둔다. 

 그 후 그는 8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아홉 곡을 작사, 작곡, 편곡까지 혼자 힘으로 해낸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그때가 1987년 3월이었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그가 대학 1학년 때 음악동아리에서 만난 여자친구와의 4년간의 사랑, 이별 그리고 재회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곡들이다. 조용필과 김현식이라는 당대 최고의 가수들에게 자신의 곡이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하고 일본 야마다 가요제에 출품한 「지난날」이 예선에서 탈락하자 그는 자신의 앨범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우려와는 달리 앨범 수록곡들이 여름부터 라디오에서 점점 전파를 타기 시작하자 음반 판매도 늘어났다. 

 1987년 10월 31일 그는 평소 잘 가지 않던 동창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다음 날인 11월 1일 새벽에 술에 취한 친구가 몰던 포니를 얻어 타게 된다. 그러나 이내 중앙선을 침범하고 마주 오던 택시와 정면충돌하여 두 사람 모두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형, 잠시 나갔다 올게. 가수 됐다고 동창이 찾아왔는데 빨리 해치우고 올게” 이 말은 유언이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발라드의 기준이 된 천재 뮤지션’, ‘대한민국의 발라드는 이영훈이 문을 열고, 유재하가 작곡, 편곡의 세계로 그 지평을 올렸다.’ 등 비평가들과 가수들이 입을 모아 그의 음악을 칭송했다. 또 총 3번의 ‘대한민국 100대 명반’ 집계가 있었는데 그의 앨범은 1998년 7위, 2007년 2위 그리고 2018년에는 1위를 차지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오랜만에 듣게 되었다. 출근길이었는데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게 아닌가. 화장이 엉망이 될까 싶어 얼른 음악을 껐다. 눈물을 닦고 진정한 뒤, 이 괴이한 무조건 반사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깊어지는 가을 때문인가, 갱년기 우울감 때문인가. TV 가이드를 사고 언니의 스노우진 청 잠바를 몰래 입고 새벽 등굣길을 나서던 중학교 시절 라디오에선 그의 곡들은 숱하게 흘러나왔을 것이다. 아니 그 뒤로도 그의 노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던 파릇파릇한 시절의 배경음악으로 재생되었을 것이다. 도로 옆 벚나무 잎들은 구릿빛으로 변하고 하루하루 높아만 가는 하늘이 아까운 이 가을 그의 노래가 그리워졌다. 그의 첫 음반이 나온 지 37년이 지난 2024년 그의 음악을 다시 찬찬히 들어보았다.     


 다시 만난 그의 비음 섞인 청량한 목소리는 조용히 내리는 보슬비처럼 내 몸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지금 들어보니 그의 목소리는 세상 어디에도 맺힌 것 하나 없는 이의 음성 같았다. 그에 관해 이미 객관성을 잃은 나는 20대 조카들과 10대 딸아이에게 유재하의 곡을 들려 주었다. 그들은 그의 목소리에 관해 “소년 같다”, “미세먼지를 한 번도 안 마신 목소리다”, “소프트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격정에 넘치는 조용필의 「사랑하기 때문에」와는 달리 그의 창법은 화려한 기교 없이 무덤덤하기만 하다. 앨범 수록곡 중 디스코 리듬에 신시사이저 소리가 요란한 「텅 빈 오늘 밤」은 다른 발라드곡들과 창법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폭발적인 가창력의 이선희와 같은 가수는 아니지만, 그만의 담백하고 수수한 멋이 있다. 그가 앨범을 발매하고 TV 가요 프로에 나올 때였다. 당시 방송국 풍속도는 녹화 전 PD가 가수들의 가창력을 점검하곤 했는데 유재하는 번번이 불합격을 맞아 자주 출연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곡은 대부분 슬프다. 그런데 그 슬픔은 세련되게 위로받는다. 80년대 발라드곡들은 신파조의 단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는 장조 코드를 썼다. 또 클래식 작곡을 전공해서 화성和聲진행이 마치 클래식 가곡 같아 기존 대중가요에 비해서 간결하다. 이 두 가지 특징 때문에 그의 곡들은 슬프지만, 듣는 이에게 슬픔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의 또 다른 특징은 섬세한 노랫말이다. 최근까지도 MZ세대 가수들에 의해 애창되는 「가리워진 길」은 시대를 초월해서 불안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 안개 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가는 //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돼주오 //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 가리워진 나의 길

 그의 첫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우울한 편지」다. 구슬픈 플루트 선율에 따라 읊조리는 유재하의 목소리에 위로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오래전 나는 이 곡의 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좋았다. 이번에 알게 된 「우울한 편지」는 여자친구에게서 헤어지자는 편지를 받은 후 만들어진 곡이라고 했다. 가사의 구성도 전반부는 그녀의 편지를 읽기 전 내용, 후반부는 유재하가 답장하는 형식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버렸는지 // 가방 안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헤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 내게 주려고 쓴 편지를 꺼냈네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펴보니 // 예쁜 종이 위에 써 내려간 글씨

한 줄 한 줄 또 한 줄 새기면서 // 나의 거짓 없는 마음을 띄웠네     

나를 바라볼 때 눈물 짓나요 //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가요 아는가요 // 내겐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어떻든, 자신에게 아무 상관없다고 하는 25살 청년의 고백이 중년의 나를 울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 배경에 따라 저울질해 본 적 없는 맑디맑은 유재하가 인생의 여름을 멀리 두고 온 나를 울렸다.      




 그는 37년 전 11월 1일 그의 이름 재하在夏처럼 영원한 여름별로 떠났다. 그의 아버지 유일청 씨는 아들이 잊히는 것이 안타까워 재단을 만들고 1989년부터 싱어송라이터들을 대상으로 개최되는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를 설립했다. 이 대회를 통해서 유희열, 김연우, 스윗 소로우, 방시혁 등 많은 이들이 유재하를 잇는 대중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코코」에는 인기 가수였던 에르네스토가 저승에서 팬들과 자신의 곡을 부르며 성대한 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매년 11월 1일마다 유재하도 그곳에서 오케스트라와 록 밴드가 동원된 콘서트를 즐겼으면 좋겠다. 콘서트가 끝난 뒤 이승과 저승을 잇는 그의 노래 다리를 건너 이곳에 와서 그를 기억하는 가족과 팬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가수의 길을 걷는 후배들을 보고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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