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는 4남매 중 막내여서 나처럼 누나들과 형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자랐다. 우리의 공통점은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 형제들과 개인적인 취향이 섞여 다양한 시대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조용필이 40주년 콘서트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2층 자리를 예매하고 서울로 향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뉴스에서 보니 5만 명이라고 했다. 우리 부부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또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대부분 팬은 우리보다 연배가 높아 보였다.
우리 좌석은 무대가 정면으로 보였지만 너무나도 멀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기타를 메고 등장한 조용필은 콩알만 했다. 그러나 LED 전광판으로 보이는 그가 부르는 곡들은 거인의 노래였다. 시작과 함께 눈물이 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난간 쪽으로 내려가서 첨 보는 팬들과 서서 노래를 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조용필은 2시간 내내 게스트 없이 수많은 히트곡을 묵묵히 자신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엮어 갔다.
40주년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그의 앨범이나 공연에 마음을 둘 수 없었다. 임신과 육아로 아이라는 새로운 성을 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2013년 10년 만에 19집 『헬로Hello』 앨범을 냈다. 뉴스에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서 음반을 사려는 중장년 고객들이 줄을 선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TV나 라디오에선 그의 노래 ‘hello’나 ‘바운스’가 자주 흘러나왔다.
그 후 다시 11년이 흐른 2024년. 조용필은 20집을 발매했다. 앨범명은『20』. 이번에는 앨범을 사서 천천히 들어보았다. 그의 곡 중 「찰나」, 「Feeling of you」 같은 곡은 할리우드 영화 속 마이애미 해변에서 롤러스케이트 타는 젊은이들 뒤로 흘러나올 것 같은 청량감 있는 노래였다. 세계적 음악 조류 潮流에 파고들어 탄생한 조용필다운 곡들을 들으니, 그는 관성을 거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이 퇴근하고 집에 오더니 조용필 콘서트를 예매했다는 깜짝 소식을 전했다. 회사에서 검색하던 중 우연히 콘서트 소식을 알게 되어 2024년 12월 1일 일요일 KSPO돔(구 체조 경기장)에서 열리는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 & 위대한 탄생 콘서트’를 충동 구매했단다. 1층 중앙 좌석은 다 팔리고 없어서 그나마 왼쪽 무대 앞 좌석을! 이 얼마나 근사한 충동구매인가.
우리 부부는 공연 시작보다 두 시간 일찍 도착해 식사를 먼저 했다. 식당과 카페마다 조용필 팬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2, 30대 자녀들과 온 분들과 파란색 팬클럽 티를 단체로 입은 분들까지 다양했다. 한껏 들뜬 공기에 우리도 취하는 듯했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입장했다. 자리를 잡고 신랑과 사진을 찍으며 관람객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공연장은 암전이 되고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첫 곡은 웅장한 사운드의 「아시아의 불꽃」이었다. 무대는 붉게 물들었고 대형 LED 화면에는 작은 글자들이 올라가는데 영화 엔딩 크레딧 같았다. 그 수많은 글자를 자세히 보니 조용필의 히트곡들이었다. 족히 2박 3일은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었다. 첨단 사운드와 무대 디자인, 수많은 관객의 에너지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넋을 놓고 바라만 봤다. 현란한 레이져 빔과 함께 데뷔 56년 차 가수의 탄탄한 목소리는 공연장 곳곳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공연 중간쯤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그가 「모나리자」를 부르자 처음 만난 언니 팬들과 함께 신나게 춤추고 노래했다. (헤어질 때는 사진도 찍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초로의 아저씨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예전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서 조용필의 적극적인 여성 팬들은 익숙했다. 남성 팬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존재였는데 가까이에서 그들을 보니 그들에게 조용필의 존재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공연 초반 그들은 점잖게 앉아 손뼉만 치더니 「기다리는 아픔」이 나올 때는 목 놓아 불렀고 「잊혀진 사랑」이 흐를 때는 아예 통로로 나와 춤추며 환호했다. 자신의 색을 잃으며 역할로 사는 것이 익숙했을 그들이 조용필의 노래에 점점 생기를 찾는 것만 같았다. 그의 노래로 청춘을 소환했고 영원한 찰나에 머무는 듯했다.
전국 각지에 사는 우리 6남매는 1년에 한 번 정도 어렵게 만나 노래방을 간다. 그러면 노래방 예약 리스트에는 어김없이 조용필 노래가 있다. 그 곡이 시작되면 서로 부르겠다고 마이크 쟁탈전이 일어난다. 나와 우리 형제들이 조용필을 이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의 목소리와 노래는 나의 심연에 웅크리고 있는 묵은 감정을 깨어나게 했다. 우리 언니 오빠들의 경우 조용필은 돌아가신 엄마가 젊고 날렵하게 부엌에서 밥을 짓던 70년, 80년대로 돌아가게 하는 ‘문’이라고 했다.
조용필의 20집 「그래도 돼」의 뮤직비디오에 “좋은 곡엔 칭찬이 달리지만, 명곡엔 저마다의 사연이 달린다.”라는 통찰이 담긴 댓글이 있었다. 그의 노래에는 그 시절 살아낸 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은 단절된 과거의 조각 하나가 아니라 그의 앨범을 통해서, 콘서트에 함께 간 자녀들과 함께 재구성되고 생생히 살아난다.
이제 노래방에 가면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조용필 노래를 마음껏 불러야지.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조용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리라. 마지막으로 그가 팬들과 오래오래 노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