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록渡江錄_박지원
몇 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 점의 산도 없이 아득히 펼쳐지는 벌판을 지날 때였다. 그 광활한 대지 앞에서 내 존재가 실로 미미하고 내 안목이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연암 박지원이 표현한 ‘호곡장(好哭場)’이라는 단어가 피부 깊숙이 와닿았다. 그곳이야말로 크게 소리 내어 울어도 좋을 곳 같았다.
산기슭이 여전히 가로막고 있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말을 더욱 빨리 몰아서 수십 걸음을 채 못 가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이 어찔어찔하면서 갑자기 눈앞에 한 무더기의 흑점들이 어지럽게 오르내린다. 나는 오늘에야 깨달았다. 인간이란 본래 의지할 데가 없으며 오직 하늘을 머리에 이고 대지를 발로 디디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말을 멈춰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서 이마에 얹고 말하였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어 볼 만하구나!”
-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
조선의 선비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좁은 국토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를 숙명으로 알고 살았다. 그런데 저 요동 벌판과 같이 한없이 드넓은 세계로 나섰을 때 그 느낌이 어떠했을까? 박지원은 사람의 울음소리를 우레에 견주며, 천지간에 기운이 꽉 막혀 있듯 사람의 마음속에도 불평과 억울함이 갇혀 있는데 이를 풀어내는 데에는 소리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다만 칠정(七情) 중에서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고 칠정 모두가 울 수 있음을 모르는 모양이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치면 울게 되는 것이다. <도강록 >
우리가 우는 순간을 보통 슬플 때로 한정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명문장이다. 서럽고 비통할 때도 눈물이 나지만 매우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크게 감동 받았을 때도 눈물이 나지 않던가. 나의 첫 소설집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에 들어 있는 단편소설 ‘분노를 다스리는 법’에 비슷한 내용이 있어서 소개한다.
엄마, 중국 난징시에 '마음껏 우는 방'이란 게 있대요. 시간당 50위안 (약 칠천 원)만 내면 마음껏 울 수 있는 방을 빌려준대요. 그 방 안에는 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고추가루물과 통마늘도 준비되어 있다는군요. 또 화가 나면 집어던져 깨뜨려도 되는 유리잔이 한 상자나 마련되어 있구요. 유리잔은 필요하면 얼마든지 공짜로 더 갖다준대요. 그 방을 하루 평균 10여 명이 이용하는데 대부분 여성이고 전문직 종사자래요.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들이 많으면 돈을 내고 실컷 우는 방이 생겼겠어요? 우리나라에도 노래방, 비디오방, 전화방 말고 '마음껏 우는 방'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 방이 생긴다면 제일 먼저 달려가고 싶어요. 한두 시간쯤 실컷 울고 나면 몸속에 남아 있던 노폐물뿐 아니라 가슴속 깊이 박혀 있던 미움과 분노가 어느 정도 녹아내리지 않겠어요?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라서 해외여행도 어렵고 여러 형태의 ‘방’들이 폐쇄되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가까운 바다를 찾거나 계곡의 물소리에 기대어 크게 한번 울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