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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남 Sep 18. 2021

11. 나를 알아주는 사람

_다산 정약용과 대산 김매순

글을 쓰는 작가나 연구하는 학자에게 가장 기쁜 일은 무엇일까? 누군가 자신의 글과 학문을 인정해주고 찬사를 보내줄 때가 아닐까? 그런데 세상에 만나기 어려운 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공자조차 '하늘도 원망 않고 남도 탓하지 않는다. 나를 알아주는 이는 오직 하늘 뿐이로다!'라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다산의 둘째 형님인 손암 정약전은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우이도로 거처를 옮기려 했다. 그곳이 강진과 가까워 혹시라도 동생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였다. 정약전은 흑산도 사람들이 못 가게 붙잡았으나 우이도로 가서 3년이나 동생을 기다리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다산은 형님이 돌아가신 것을 알고 통곡하며 이렇게 글을 썼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차라리 영영 죽는 게 낫다. 아내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자식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형제와 친지들 모두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데, 유일하게 나를 알아주는 분이 세상을 떠났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이처럼 덕이 높은 분이 집안에 있는데도 자식이나 조카들이 알지 못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느냐. 선대왕(정조)께서는 신하들을 환히 파악하셨는데 매번 ‘형이 아우보다 낫다’ 말씀하셨다. 아아 임금님께서는 우리 형님을 참으로 알아보셨다.     


강진에서 18년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낡고 퇴락한 고향집으로 돌아온 다산. 이제 벼슬길도 막혀 있었지만 학자로서 다산은 더 고독했다. “책을 안고 돌아온 지 삼 년째이나 함께 읽을 사람이 없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대산 김매순이 다산의 경학관계 저술 《매씨서평》을 읽고 훌륭하다는 평가의 글을 보내주었다. 김매순은 노론 출신으로 예조참판을 지냈고, 당시 학문과 문장으로 높은 평판을 받는 분이었다. 그 편지를 받고 다산이 보낸 답장을 보자.       


 박복한 목숨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이제 죽을 날도 멀지 않은 때에 이러한 편지를 받고 보니 처음으로 더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당파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은 유명학자의 인정을 받고 매우 기뻐하는 다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아, 다산의 그 마음을 알기에 더욱 가슴이 찡하게 저려 온다. 독자가 공감한다고 보내주는 메시지나 지지의 글 한 마디에 힘이 솟고 다음 작업을 할 의욕이 생기는 작가들의 심정이 그와 같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작가들을 먹여 살리는 밥이고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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