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좀 만나."
"정말 하나 필요는 한 것 같아."
"그래? 드디어 외로움에 사무치나보군!"
"그렇다기보다는, 고독사 할 것 같아. 나 죽어도 일주일 동안 아무도 모를 일이지."
"무슨, 한 시간만 늦어도 회사에서 득달같이 전화 올텐데."
프리랜서로 전향하려고 알아보는 내 마음을 모르는 친구는 회사 덕분에 '고독사' 걱정 따위 붙들어 매라고 너스레였다. 나는 엄마가 내 오피스텔에 제 집처럼 드나드는 게 싫어서, 나와서 산 지 5년 만에야 겨우 한 번 엄마를 초대할 정도로 남들이 보면 대단한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척 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고독사를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혼자 죽어버리면, 너무 젊은 고독사같아 애처롭다, 내 자신이.
회사에서 존경하는 선배이자,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언니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언니는 쓴웃음 참아가며 차분하게 말했다.
"결국 너도 남자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생존 체크 해줄 사람이 필요하구나."
"딱 맞는 말이네요. 절실해요, 가끔, 아주, 자주."
"그것도 너 나이때까지나 그렇고, 나까지 오면 그냥 준비하며 살게 되어 버리지."
"무슨 준비요?"
"난 길에서 객사해서 누가 집에 들이닥쳤을 때, 혼자 살아놔도 번듯하라고 깔끔하게 청소해놓고 나가."
"하아."
"그리고, 언제 죽어도 우습지 않게 비싼 속옷 입어. 혼자 살아도 잘 살았다, 이런 말 듣고 싶어서."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니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생존 체크 해 줄 사람 찾아. 때되면 '밥 먹었냐', 늦으면 '들어갔냐',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 너랑 연락 안 되면 너가 어디있는지, 어디가 아픈지 궁금해 하는 척이라도 해주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된다."
"속상한 말인데, 그 옛날부터 저도 남자한테 바라는 건 생존 체크가 전부였어요. 자주 못 만나더라도, '너 어디니', '들어갔니' 이런 말 한마디 해주는 덕분에 사는 것을 사는 것처럼 살았던 것 같아."
"사는 것처럼 살아, 지금이라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남자들도 사이가 깊어지고 나에게 익숙해지면 그렇게 나 궁금해하면서 챙겨준 사람 많지 않았던 것 같아. 오래 만나면."
"오래도록 안 만나고 자주 자주 바꿔서라도 그런 놈 하나 둬. 너처럼 살 밖에 수녀님이 되는 게 낫다. 내 꼴 나기 전에 정신 차려."
언니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언니 마음 너무 잘 안다. 본인처럼 되지 말라는 말, 진심이다. 언니는 늘 단정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듯한 사람이다. 그 단정한 성품 때문에, 정작 본인은 본인 잘 사는지 생존 체크해달라며 남자에게 징징거릴 사람이 아니다. 알아서 척척척, 오롯이 혼자 준비하고, 혼자 단도리 하며 폐끼치지 않는 혼자의 삶을 가꾸느라 차분하게 노력하신다. 다만, 그 과정이 고통스러우신 것 같다. 나더러는 하지 말라고 손사래 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리다.
"이렇게 살다가 회사라도 안 다니면 정말 고독사하겠죠?"
"왜 사람들이 임금 피크제 서명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싶어하는지 아직 모르겠니? 나이 들어도 나갈 곳이 있어줘서 고맙고, 나 없으면 어디 갔냐고 지긋지긋하게 찾아주는 게 미더워서야."
"일이 좋아서 옮기고, 일을 하고 싶어서 도전해왔는데, 요즘에는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에서 하는 일까지 마음에 들면 그런 복 많은 노인이 어디 있냐. 그런데, 그냥 다니는 거야. 다른 이유에 무릎 꿇고."
주마등처럼 20년이 스쳐 지나갔다. 대학만 가서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 듣고 나름 참아가며 대학에 갔다. 대학에 가면 어른인 줄 알았다. 내가 생각한 어른, 어린 사람들에게 지갑에서 두둑하게 용돈을 꺼내주시던 아빠처럼 될 줄 알았다. 애들이 하고 싶은 거 도와주고, 먹고 싶다면 다 사주는 그런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대학 2학년, 그런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는 졸지에 고아가 된 것 같았다. 그 때부터의 내 인생은 잘 정리가 안 된다. 공부하다, 일 하다를 반복했고,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직업을 찾아 방향도 모르고 무작정 흘러다녔다. 이 준비를 더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해서 준비를 했고, 준비한 만큼 돈을 더 벌기는 커녕, 일을 할수록 빚이 늘었다. 어영부영, 모터 없는 돛단배처럼 흘러다니던 나는 마흔이 되었다. 일이 겨우 좋아졌는데, 그렇다고 회사에서 오래 다니기 위해 승진을 염두에 두고, 이것 저것 몸 사리거나 몸을 내던질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일만 집중하기 위해 작은 회사로 옮기거나, 하다못해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것도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마흔이라는 숫자가 내 머릿속에 가득차버리자 내가 더이상 모험을 해도 되는 나이인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나 자신에게 하루가 어땠는지, 밥은 먹었는지, 집에는 들어갔는지, 잘 자라던지, 한 마디 해줄 사람도 없이 홀홀단신 내팽겨쳐있었다. 문득, 정신 차리고 나니.
일 생각만 하며 살아내보자고 다짐해봤다. 갑자기 열과 성을 다하여 조직에 충성하겠다던 가증스러운 얼굴이 생각났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 여자처럼 본인의 사리사욕만을 위해 주제 파악 없이 갑자기 임원이 되겠다는 종교적 목표를 세우고 불철주야 머리 굴리며 사는 것이 묵묵히 일만한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가 되는지 두렵다. 절대 그럴 생각 없다. 그렇다면 내 생존의 목적지는 무엇인가. 건사할 가족 하나 없이 일만 했다고 하는 인생에서 마지막 모습은 무엇인가.
무엇이 내 생존을 이어지게 하는 데 가장 큰 이유가 될까.
적당한 돈 모으는 것? 아, 그래 '파이어 족'이 유행이라지. 요즘 스무살들은 용돈대신 주식을 달라고 하면서 마흔이면 은퇴할 수 있게 아끼며 산다는데, 나는 얼마나 모으면 될까. 월세 살이 전세로 바꾸고, 할부로 지른 자동차 빚 다 갚고, 눈 녹듯 사라질 무엇인가를 위해 저질렀던 신용대출 다 갚고, 그리고 환갑 지나도록 살아져도 걱정없을 돈 모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마 나는 환갑까지 눈썹 휘날리며 일해야할 팔자인가보군. 누군가 그랬다. 귀하지 않은 팔자는 노인까지 일한다고. 중전마마 팔자는 집에서 애들 보면서, 점심 모임에 호텔 간다고. 나는 아니구나. 이번 생은 그냥 정년까지 다니는 회사 보이면 가만히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해야하나보다. 아침에 나갈 곳이 있다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는 언니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래, 나갈 곳에 충성하자. 퇴근은 제때 시켜주는 정말 좋은 곳 아니던가. 그래, 소소하게 빚이나 갚으며 연금을 넣고 빛의 속도로 늙어가는 이 길에 올라탄 것을 모르는 척 하지말자. 나는 그렇게 내 생존의 변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제 나는 일을 좋아한다는 누명을 쓴 적도 있다. 사실 퇴근을 재촉할만한 이유가 없어서 그랬다. 자기개발을 위해 모임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녁에 힘을 내 운동을 다닐 여력도 없다. 나는 퇴근하면 누워서 유튜브나 보는 사람이다보니, 내 퇴근이 재촉될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앉아있다보니 다들 일을 너무 한다며 오해했고, 대리님들이 퇴근을 못할까봐 스르륵 먼저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란 참 길었다. 새벽에 출근하고 별 보이기 전에 퇴근하니, 시간이 무지 많았다.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쪼개가며 글을 쓰던 열정같은 것은 어딘가 증발해버렸고, 그 어떤 것도 손에 잡지 않으려는 내가 무서웠다. 일기라도 쓰려고 침대 맡에 다이어리를 놓아두었건만, 3개월 내내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생존을 즐기지 못하고, 겨우 겨우 생존되어지는 부류가 되어버렸다. 생에 대한 열정과 못 이룬 그 무엇에 대한 집요한 갈증때문에 퇴근하고도 공부하고, 재테크 모임에 나가는 사람들을 본 적 있다. 몇 번은 나도 더 이상 뒤쳐지기 전에, 그들의 꽁무니라도 쫓아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근성을 끌어내기에 나는 내 생존의 이유에 대해 근원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왜 사는가.
왜 하루하루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내며, 살아내지는 동안 살아내져버리고 있는가.
내 생존은 나 스스로를 즐겁게 하고 있나.
나 혼자 살아도 잘 살아낸 시간이라며 만족하며 죽을 수 있나.
내일 아침이 기대되도록 살고 있나.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아니지, 뭔가 대단한 것을 위해 떨쳐 일어날 생각 없다. 알 수 없는 뜨거운 것들을 좇아 목표도 없이 우르르 따라가는 무리 속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혼자 있어도, 내 인생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궁금해해주지 않아도, 이렇게 푹 삶은 야채처럼 늘어져서 때되면 출금되는 각종 대금들을 막아대느라 월급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살아내는 노예처럼 의미 없이 숨쉬는 것은 조금 지겨우니, 그나마 작아도 즐겁고 만족스러운 일을 찾고 싶다. 혼자라도 행복했다며 웃으며 죽고 싶다. 죽을 때는 안 아팠으면 좋겠다. 잠자듯이 꿈꾸듯이 죽었으면 좋겠다.
이 와중에 생존 체크 해주는 낯선 남자가 내 반경에 들어오면, 그것으로 이 막연한 답답함과 무력함이 행복으로 바뀔까. 도대체 이 지겨운 매일 매일은 언제 이렇게 빨리 흘렀나. 재야의 종소리 들은지 엊그제 같더니 누구마음대로 벌써 4월이란 말인가. 1사분기 마무리 보고서를 쓸 무렵이면 결국 또 여름옷 입겠구나. 이런 안부를 낯선 남자가 물어주면, 나는 덜 부질 없을까. 생존 체크라는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을 보니,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요양병원 선생님이 더 필요한 건가.
큰일 날 소리, 인생은 60부터라는데, 우린 아직 젊다고 서태지가 말하지 않았던가.
중언부언, 중 염불하듯 이상한 의식의 흐름에 나를 맡긴 채 끄적이다보니 결국 나는 혼자고, 내일도 무탈하게 혼자 일어나, 회사로 기어가야한다. 그래, 내 인생 정말 무지하게 멋지다. 생존의 이유같은 고상한 척은 접어두고 잠이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