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평가지표와 데이터, 뭣이 중헌디
데이터의 시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알아야 면장질 한다'는 말이 새삼 위력을 갖는 시대. 데이터를 모을 줄 아는 게 돈이 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던 발빠른 IT기업들이 좋은 퍼포먼스를 내며 치고 나가자 뒤늦게 뛰어든 대기업들이 뒷 차에 몸을 실었다. 이른바 '마이데이터 사업'은 연내 닻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측이 된다. 후발주자들은 앞선 기업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IT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통찰력과 실행력을 뒷받침하는 생각회로를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데이터 시대랍시고 데이터를 긁어모으면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무릎팍도사가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시시각각 쌓이는 데이터 그 자체는 택배 포장지처럼 무용지물 쓰레기다. 데이터 때문에 서버를 증설해도, 클라우드를 맥스로 계약해도 미친듯이 쌓이는 그 양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쌓이기만 하는 데이터 많이 보유했다고 데이터 비즈니스를 잘 할 수 없다. 어떤 필요로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걸러네야 하는지 통찰력을 가지고 타겟팅하지 못하면 사실 이 모든 것은 돈 주고 비싼 쓰레기 모으는 일이다. 돈 주고 쓰레기 창고를 증설하는 것이고 데이터 센터 관리하는 데 드는 돈 생각하면 돈 먹는 하마를 키우는 일이 될 것이다.
생각회로를 따라갈 수 없어서 돈 먹는 하마 키우는 일이라고?
우리를(대기업) 뭘로 보고.
우리가 사람 뽑으면 되지 (주로 데이터 전문가, IT 인력)
데이터 전문가들은 많은데, 왜 내 사업 잘 되는 데에는 유효타가 되지 못할까.
내 사업이 잘 되기 위한 통찰력은 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며 강연하는 사람들, 그리고 데이터 시대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며 교보문고 부터 들리는 사람들은 사실 내 사업을 나처럼 접근하지 못한다.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하겠다는 핀테크 업체 사장은 Nice 신용평가, KCB 신용평가에서 주는 신용도 이외의 신용을 체크하고 싶어진다. 같은 600점대인데 어떤 사람은 대출을 일으켜 갚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잠깐 대출을 일으키고 바로 갚는 등 패턴이 다르기때문이다. 이 사장은 이것 저것 데이터를 보고 싶어진다. 이 사람의 쇼핑 습관, 이 사람이 월급을 어디다 질러버리는지 그 패턴을 보고, 이 사람의 연봉 상승율을 보고, 이 사람의 자산 상태를 들여다보니, 이 사람은 학창시절 무슨 사연인지 사채빚을 지고 시작했으나, 그 다음 차근차근 갚아 나가며 소박한 연봉이지만 그거 쪼개가며 적금도 들며 살고 있다. 사채빚때문에 KCB 신용점수는 낮지만 이 사람한테 빌려주면 정말 잘 갚을 것 같다. 데이터를 보니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과감하게 중금리 신용대출을 늘려주기로 했다. 대출주선이 잘된다. 수수료가 쏠쏠하고 이자가 따박따박 들어온다. 데이터를 자기 사업에 제대로 사용한 예이다.
이런 방식은 대기업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기업은 이렇게 할 것이다.
빅데이터 전문 TFT가 조직된다. 그들은 핀테크 업체같은 앱을 개발하자며 사람도 뽑고 내부 인력도 차출되어 회의를 시작한다. 일단 중금리 신용대출을 많이 일으켜보자고 한다. KCB, NICE, 한신평 등의 신용점수를 스크래핑해서 가져오는 조회 페이지를 코딩한다. 그리고 다른 데이터들을 사오기 위해 데이터 제공업체들과 위탁계약을 체결한다. 앱을 오픈한다. 오프라인 창구에서도 신용점수가 낮아서 대출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은 대기업 앱에서도 안된다. 오프라인에서와 같은 신용평가사 점수를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규대출은 생각보다 원래 대출해줄 수 있던 곳에서만 터진다. 그러면 데이터는 왜 사왔는지 궁금하다. 아마 빅데이터 시대니까 데이터는 필요해서 샀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데이터 뭔가를 했으니 시대를 잘 따라잡고 있다고 자축한다. 사례를 더 알아보자고 한다. 잘 된 핀테크 업체 사례를 연구하거나, 연구된 보고서를 만든다. 아이디어는 타이밍인데 또 한발 늦는다.핀테크업체와 대기업의 밸류 차이는 PER 에서부터 게임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SG 얘기 하다말고 갑자기 데이터 이야기를 한 이유는 하나다.
ESG에 휘말리지 말라고.
ESG 라는 논의를 내가 (내 회사가) 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내 회사의 사업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라니 나도 ESG 하겠다고 말을 뱉었고, 그래서 ESG 평가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뭘 하는지 모를 수 밖에 없다. 누누히 말했지만, 유럽도 난리다. 지금 이걸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각종 해외 사례 보고서로 만들어 가져오는 컨설팅 업체에 끌려가지 마라. 그돈 들여 받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보고서는 영문 자료의 번역일 뿐, 내 사업을 위한 통찰력은 들어있지 않다. 'ESG 평가 보고서'를 만들어 주신 그 전문가 집단에게 휘둘리지 마라. 그들이 가져온 보고서를 가지고 결국 뭘 할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ESG는 투자에 대한 방향을 고민하며 시작되었다. 지속가능한 투자가 되도록 망해가는 산업의 막차를 타지 않도록 잘 좀 보고 투자하자는 각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내 기업도) 그 시작을 잊으면 안된다. 신규 사업을 투자하거나, 금융기관으로서 투자 대상을 물색할 때, ESG라고 도맷금쳐진 방대한 양의 데이터 속에서 내가 중심을 잡을 방향이 어디인지 나는 어떤 목표로 ESG 를 이용할지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 방향은 내가 (기업이) 결정해야 한다. LG의 회장님이 맥킨지 믿고 2G 폰에 천착하지 않았더라면, LG가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LG의 양반 문화를 존경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스토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ESG는 모두를 혼란하게만 하고 있는 것같다. 그 기업이 금융기관이든 일반기업이든, 소재회사든, IT 회사든 ESG 를 추진한다는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면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EC가 제시한 6가지 원칙을 소리치고 있다. EC가 제시한 원칙들을 추진하겠다며 보고서를 쓴다. 그 보고서는 같은 내용을 담으면 안된다. 내 기업과 저 기업은 다른 사업을 하고 있으니, 그 내용과 방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 보고서를 왜 쓰는지 ESG 보고서를 만들어가며 도달하고 싶은 방향은 무엇이었는지 생각을 놓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된다. 소집된 ESG추진위원회 회의 장소에 자문업체가 초대된다. 그들은 해외 사례를 예시로 든 자료를 돌린다. 위원회의 막내는 그 자료를 회사 양식으로 변경한다. 수치적, 정량적인 것이 아니라 정성적인 것을 보겠다니 요약하기도 어렵다. 비재무정보들을 가지고 뭐가 낫다고 결론 내리기도 애매하다. 그냥 모호하게 결론 맺기로 한다. 애초에 그 자료를 왜 달라고 했는지도 모호해진다. 어느순간 평가는 통과의례처럼 시시해진다. 이렇게 되면 안된다.
컨설팅을 받는 것은, 자문을 받는 것은, 그들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목적은 뚜렷한 결과를 지향해야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투자 의사결정과정이었는지 공시하는 내용에 관한 자료를 요청한다면 그 자료를 통하여 내가 도달하고 싶은 방향이 있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그렇게 되면 ESG가 태초에 제기된 목적이 흐려진다. 결국엔 모두 좋자고 시작한 일인데, 지겹고 짜증나는 불필요한 일이 되진 말아야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내 기업이 ESG 라는 고민거리를 통해 어떤 목표를 이룰 것인지 방향이다. 그 방향은 나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