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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12. 2021

의미를 묻어두기 위해

1일 1드로잉, 볼펜

#118일차

*2021.11.11. 10분 글쓰기*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어떻게 교사가 되었는지,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4전에 책으로 냈었다. 외에 6명의 공저자들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계속 교사를 있을지, 교사의 마음은 어떻게 지킬 있는지 꾸밈없는 글을 썼다. 교사가 되기까지 있었던 일과 교사로 살며 겪은 좌절감과 전환점대해 미사여구 없이 썼는데 발가벗은 느낌이 정도로 솔직했다. 그때의 글은 교사를 직업으로 고민하는 사람들과 교사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었다.


새로운 일은 준비 없이 무모한 용기만 갖춘 시작되었다. 2년 동안 신문사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한 것이다. 학교 선생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잘 알려지지 않은 학교 안 이야기를 밖으로 퍼 나르는 전령사의 역할을 자처했다. 그때의 나는 배움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역동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썼다. 학교 도서관 저널의 의뢰를 받아서 서평을 때는 책의 예비 독자와 도서관 사서를 위한 글을 썼고 교육부 학부모 웹진에서 요청한 갈등의 실마리에 관한 글을 때는 학부모를 위한 글을 썼다. 우리 반 학부모님 가운데 교대 교수님이 있는데 예비 교사들을 대상으로 정서에 관한 수업을 부탁하셨다. 코로나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을 위해 어떤 정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길 바라셨다. 이번에는 후배들을 위한 글,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쓸 차례다.


글을 준비하면서 책을 읽으면 목적이 뚜렷해서 짧은 시간 많은 것을 흡수할 수 있고 내용이 조직화되어 명료한 학습이 이뤄진다. 글을 매개로 내 공부가 탄탄해지니 원고 청탁은 더 좋은 나로 성장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 글을 쓰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드러난다.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쓰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글을 쓰는 내내 나 자신과 마주한다. 글을 써보면 나 아닌 것, 나와 관계 맺지 않은 이야기는 조금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쓰인 글들의 방향을 거꾸로 돌리면 소실점처럼 나로부터 출발한 것이 보인다.


글은 언제나 혼자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발적 고립 상태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글이라는 접경지대를 통해 세상과 연결된다. 글을 쓰면서 무지한 것보다 무심했던 것에 대한 자책이 들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학교 교사로서 지식의 무게에는 짓눌리지 않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문제나 아픔에 무관심했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


매일 글을 쓴 지 100일이 넘었다. 50일까지는 미지의 세계에 입문한 사람의 호기심과 경이로움으로 꿈결 속에서 글을 썼다. 마음의 깊은 곳을 느끼며 산책하고 이파리를 주워 그리면서 목적 없는 자유분방한 글을 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위한 글이었다. 50일 이후부터는 학교 업무가 바빠지고 인간관계의 피로감이 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피곤한 하루 끝에 마음이 갈 곳을 찾지 못해 떠다나기도 하고 따뜻한 지지를 느끼지 못한 날도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복잡한 속내를 더듬어 보스스로를 위로하는 연민과 자기 이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50일 이후 지금까지도 작자와 독자가 일치한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서울 지도에 큰 삼각형을 그리며 뛰었다. 의미 있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 일을 마치고 병원 검진과 행정업무 때문에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하는 사이 신경 쓰이는 전화통화도 두 번 있었다. 저녁에는 줌으로 하는 직무연수와 대학원 청강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와서 쓰러지듯 주저앉아 오늘의 글을 쓴다. 혓바이 돋을 것 같은 피로 속에서 누구를 위해, 왜 글을 쓰고 있나 생각해보며 박인걸의 <의미>에서 이유를 찾았다.


꽃잎들이 중력에 의해 정해진 운명대로 추락해도 쓸쓸하거나 실패로 보이지 않는 건 꽃잎이 묻어둔 의미가 있어서다. 우리가 죽어서 이 세상과 작별해도 의미를 이곳에 묻어둔 채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남긴 의미는 누군가 생을 포기하는 순간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따뜻한 손길이 될 수 있다. 화가 난 상태로 글을 쓰면 글이 아니라 낙서에 가깝고 펜을 사정없이 휘갈기다 공책이 찢어지기도 해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 화나고 절망했던 일과 조금이라도 간격을 벌린 채 그 대상을 바라보며 쓰게 되므로 글은 자기 치유의 효과가 있다. 나를 어루만져준 글이 브런치나 밴드, 페이스북을 통해 멀리 퍼져나가 삶이 산산이 부서져 마음이 텅 빈 사람에게 구조신호가 된다면 한없는 보람이 될 것이다. 글을 쓰며 우리가 묻어둔 의미가 켜켜이 쌓여 기댈 곳 없는 사람을 위한 푹신한 쿠션이 된다면, 그래서 미지의 수신자가 베고 누울 수 있는 베개가 되어 고단한 그의 단잠을 도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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