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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Sep 07. 2021

1일1드로잉

치자꽃

#53일차

병원을 나서서 집으로 가는 길.

내 그림자가 음울한 청색으로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 이 기분을 떨쳐낸 다음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전철역에서 한정거장 미리 내려 익숙지 않은 길을 찾아 걸었다. 그 골목길 옆에 작은 카페 "율리"가 있었다. 독일어로 "7월"이다. 7월에 개업해서? 주인장의 생일이 7월인가? 궁금증은 피로감보다 크지 않아 조용한 손님으로 자세를 취하고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는 나처럼 혼자인 사람들이 간간이 들어왔다.


-오늘은 라떼 안 드시네요?

-이번에도 진하게 내려드릴까요?

-거품 적게 드시죠?

주인은 사람마다 다른 커피 취향을 모두 기억했다. 손님들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나의 입맛과 선택을 기억해놨다가 설명하지 않아도 맞춰주는 사람. 주인은 커피와 함께 인간다움을 잔에 담아주고 있었다.


7월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기운을 얻어 집으로 향했다. 현관에 4층 아주머니가 키우시는 화분에서 치자꽃 한 덩어리가 툭 떨어져 있었다. 밝은 노란색 꽃잎이 캉캉치마처럼 꽃술을 겹겹이 에워쌌다. 짙고 매혹적인 향기는 캉캉춤을 추는 프랑스 무용수에게 어울리는 향수 같았다.


치자꽃은 한없는 그리움이라는 꽃말을 지녔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소수자로 살며 고향을 그리워한 의사이자 시인인 마종기의 "전화"가 생각나는 밤이다. 보고 싶은 그가 없을 때 그의 집으로 전화해(집전화 밖에 없으니까) 그의 방을 전화 벨소리로 가득 채웠다가 그가 방문을 열면 쏟아져 밤새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스마트폰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시의 정경도 한없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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