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윰 Sep 14. 2021

1일1드로잉

강아지풀

#60일차

보도블록 사이, 전봇대 근처, 담벼락 가장자리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강아지풀이 있다.

모습을 따라 그려보면 풀 이삭이 강아지 꼬리를 닮아 이름이 된 까닭을 바로 이해하게 된다. 손아귀에 넣고 쓸어 올리면 시골 외갓집에서 봤던 mix 진돗개의 뻣뻣한 꼬리가 생각난다.

사물을 인식하는 좋은 학습법은 그림이 아닐까 싶다. 그림을 그리면 존재를 부분적으로 대하지 않게 된다.


식물 종 분류에 관한 과학논문에는 반드시 식물 세밀화가 들어가는데 사진보다 더 정확하고 정보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은 왜곡도 있고 가려진 부분도 있어서 식물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꽃, 잎, 열매, 생애주기, 씨앗 등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자세히 묘사하는 그림을 보태니컬 일러스트 또는 보태니컬 아트라고 부른다. 식물학자들은 하나의 식물을 채집, 표본해서 연구하며 그림을 완성하는데 몇년이 걸리기도 한다.


키 작은 강아지풀을 따라 그리다 보니 벼를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웬걸 찾아보니 벼목, 벼과에 속했다. 생김새만 닮았지 양식을 만들지 못한다. 보통 식물마다 하나쯤은 어디에 좋다는 식의 효능이 있던데 강아지풀은 잘 모르겠다. 아무 데도 쓸없어 보이는 강아지풀이 그래서 정감 가고 귀엽다.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과 수업할 줄만 알았지 이렇게 많이 문서 다루고 상당 시간 컴퓨터와 마주할 줄 미처 몰랐다. 공문서의 목적과 방침, 기대효과를 줄줄이 만들어내다 퇴근길에 강아지풀을 보면 그 가벼움과 소박한 생김새에 눈길이 머문다. 한없이 멍 때리고 바라보게 된다. 작은 바람에 유연하게 휘는 강아지풀이 꼭 아이들을 닮았다. 내일 공부는 조금 느슨해지더라도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많이 웃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1일1드로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