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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Oct 03. 2021

특별한 날에 먹던 파스타

사라지는 특별한 것들


엄마와 언니들과 함께 한 서울 나들이에서 처음 파스타를 먹어봤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쯤이었을까. 시골에서 경험할 수 없는 에스컬레이터도 어색했던 때였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란 곳을 처음 갔다. 수프는 달짝 지근했고, 빵은 부드러웠고, 립은 갈비 같았다. 그리고 파스타는 생김새 자체가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름도 낯설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까르보나라'였다. 꾸덕꾸덕한 크림소스에 잘 버무려진 꼬들꼬들한 면의 식감이 신기했다. 소면, 라면, 칼국수, 우동과는 또 다른 '나 외국 맛이야!' 하는 맛이었다. 느끼하면서도 묘하게 고소하고 입 안에 감겼다. 중독성 있었다. 


파스타는 어린 내게 특별했다. 가족들과 서울에 놀러 가는 특별한 날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서울에 가면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든 패밀리 레스토랑이든 파스타를 먹곤 했다. 그렇게 파스타를 좋아하게 됐다.


친구나 지인들과도 즐겨먹는 음식이다. 요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어도, 파스타를 파는 곳이 많으니까 더 쉽게 먹는다. 파스타에 스테이크나, 피자 혹은 리조또를 함께 시키면 조화롭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자주 먹은 여러 파스타


라면이나 소면, 칼국수처럼 면발이 쉽게 불지 않아서, 와인 한잔과 함께 천천히 즐기기에도 좋다. 파스타가 밀가루 음식이라서 마냥 몸에 안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파스타면에는 밀가루뿐만 아니라 다른 곡물도 들어있고 지방 함량은 매우 낮다. 천천히 분해되기 때문에 칼로리가 완전히 연소되어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막는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슬로우 푸드'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보통 자극적이고 지방이 많은 소스 범벅 파스타를 먹기 때문에, 파스타가 살찌는 음식이 된 것이다. 하지만 파스타는 자고로 소스 범벅이어야 맛있지 않은가? 나는 토마토소스 보다도 칼로리가 더 높은 크림 파스타가 참 맛있다.




파스타는 식당에서 먹는 제일 맛있긴 하지만,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어먹을 수 있다. 주로 크림소스와 오일 소스 파스타를 해 먹곤 했다. 대게 크림 파스타에는 넓적해서 소스가 많이 묻어나는 페투치네면을, 오일 파스타에는 얇은 스파게티면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식감이 풍부한 것을 좋아해서, 어떤 파스타 요리를 하든 페투치네면을 썼다.


베이컨 크림 파스타 

시판 소스로 쉽게 만드는 베이컨 크림 파스타.

매일 크림 파스타를 먹는 게 아니라면, 1인 가구가 우유와 생크림까지 따로 사서 직접 크림소스를 만들면 생크림은 분명히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게 될 것이다. 시판 크림소스 하나를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맛은 시판 소스가 다 내어주니, 베이컨을 굽고, 면만 삶아주면, 맛있는 요리가 끝났다. 여러 제조사의 소스를 골고루 맛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베이컨 오일 파스타

담백한 베이컨 오일 파스타.

집에 파스타면만 있고, 시판 소스가 없다면 오일 파스타가 딱이다.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써서 마늘과 페퍼론치노, 베이컨을 튀기듯이 볶았다. 삶은 면을 넣은 후엔 재료와 짧게 같이 볶고, 파마산 치즈가루와 파슬리를 뿌렸다. 제대로 된 소스를 넣지 않아서, 맛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치즈와 베이컨이 들어가서, 고소하면서 짭짤하고 파스타면이 온전히 느껴져서 담백하기도 했다. 


이제 파스타는 더 이상 내게 특별하지 않다. 특별한 날에 먹지도 않고, 특별하지 않게 내가 만들어 먹기도 한다. 가족들과 서울 나들이를 할 필요도 없다. 내가 이미 서울 시민이 된지도 몇 년이 되었으니까. 서울에서의 특별했던 파스타는 정말 어린 날의 추억으로 남았다. 


나이 먹으면서 많은 것들이, 일상이 되어 평범해지고 특별함이 사라진다. 반짝이면서 새로웠던 것들도, 빛을 잃고 익숙해져 버린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삶에 특별한 것이 없다고 불행한가? 그렇지는 않다. 아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퇴근을 한다. 운동을 하고, 씻고, 쉰다. 글을 쓰기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나 드라마도 본다. 매일 비슷한 하루지만, 소소하게 즐거울 때가 많다. 항상 먹던 캡슐로 내린 아메리카노지만, 매번 맛있다. 집밥을 먹다가 다른 메뉴를 사 먹을 때면 뭐든 더 맛있다. 운동을 할 때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으면 기쁘다. 우연히 재밌는 책을 발견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추천받은 영화가 딱 내 취향이었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다. 아주 엄청 가끔 글이 잘 써질 때면 짜릿하다.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은 특별하지는 아니지만, 특별하게 즐거울 수는 있다. 


서울이 신기했던 10대 때만 해도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엿하게 서울에 독립해서, 나 하나 정도는 잘 먹고살 만큼 돈을 벌고,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특별한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늦둥이 막내딸로 자란 내가 이렇게 서울에서 잘만 살고 있다니!


내 일상이 매 순간 특별하게 즐거웠으면 좋겠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게 아니라, 조금씩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이 되길. 내가 그 특별함을 놓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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