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나의 모습으로 관계 맺기
인생은 단편영화가 아니다. 한 번의 실패가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지난주, 켄의 부모님과 다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나는 계속 머릿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엔 조수석을 지키자고. 그동안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은 마음에 늘 조수석을 양보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자리를 늘 양보했던 내가 참을 수 없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직 코로나가 완치되지 않아서인지, 차 안에서 30분 동안 잦은 기침을 했다. 집 앞에 미리 나와 우리를 기다리던 시부모님은 우릴 반겼지만, 나는 혹시나 전염시킬까 봐 평소 하던 허그 대신 가볍게 주먹 인사를 했다. 짧은 인사 뒤, 큰 용기를 내어 다시 조수석에 앉았다. 시아버지 하랄드는 잠시 멈칫하더니 가볍게 “Mm-hm(으흠)” 하고 긍정의 제스처를 보이며 아무렇지 않게 뒷좌석으로 이동했고, 우리는 차 안에서 정답게 안부를 나누며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조수석을 양보하기 시작한 건, 켄과 연애한 지 1년쯤 되었을 때였다. 당시 우리는 차가 없었고, 하랄드의 차를 켄이 운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차주인인 아버님이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어머님과 수다를 떨고 싶어 뒷자리에 앉았고, 나중에 우리가 차를 산 뒤에도 아버님이 계실 땐 습관처럼 조수석을 양보했다. 사실 이 양보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늘 해오던 양보를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큰 용기를 냈고,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만 크게 느껴졌을 뿐, 실제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용기를 내자 그다음 행동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나는 차 안에서 분위기를 띄우려 애쓰지 않았다. 신나는 척하지 않고 그저 내 기분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레스토랑에서도 억지로 웃거나 떠들지 않았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내가 웃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느긋해 보였다. 주문할 때 어머님이 결혼 축하로 사는 거니 내가 먹고 싶은 걸 시키라 하셨다. 약간 눈치가 보였지만,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잔뜩 주문했다. 다행히 모든 음식이 맛있었고, 궁금해서 주문한 와인도 내 취향에 맞았다. 독일어를 못 알아들었을 때도 굳이 알아듣는 척하지 않았다. 한 번 낸 용기는 계속 이어져 마치 초싸이언처럼 허공을 가로질렀다. 자연스럽게 진짜 웃음이 자주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식사 자리였고, 나도 살짝 취기가 올랐다. 어머님과 아버님도 신이 나신 듯했다. 내가 억지로 애쓰지 않으니, 두 분도 훨씬 더 편안해 보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우리는 2차까지 갔다. 근처 바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원래 같았으면 밖에서 돈 쓰는 게 아깝다며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 이제는 시어머니가 된, 8년 동안 알고 지낸 수잔의 취한 모습도 처음 봤다.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뒷좌석에서 수잔은 하랄드에게 기대 편안하게 졸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장기적인 좋은 관계를 쌓는 데 있어 ‘솔직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늘 ‘솔직한 나’가 너무 형편없다고 생각해, 그 모습을 드러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오히려 가면을 쓰고 억지로 꾸미는 것이 더 형편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꾸밈없는 모습은 적어도 진실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꾸며낸 모습은 그 자체로도 거짓이니까.
켄과 단둘이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해방감이 마치 쏟아져 내리는 듯 느껴졌다. 인생에서 이렇게 온몸이 가벼웠던 적은 없었다. 조수석을 양보하지 않은 작은 행동이 그 시작이었다. 내가 스스로 그 자리에 얽매여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용기를 내기 전에는 세상이 뒤집힐 것처럼 두려웠지만, 그것은 그저 내 머릿속의 허상이었다. 문득 내 양보가 오히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편안해지길 바라며, 나를 배려하기 위해 그 양보를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내가 조수석에 그냥 앉아 있어도, 인사를 잘 못해도, 억지로 웃지 않아도, 비싼 메뉴를 시켜도, 독일어를 잘 못 알아들어도, 내가 원하는 음식을 더 먹어도, 화장실을 자주 가도, 켄과 평소처럼 투닥거리며 짜증을 내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그저 내가 편안해지는 것을 더 원하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꽤 솔직하고 거침없이 말하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남들보다 크게 웃거나 말을 세게 한다고 해서 솔직한 것이 아니다.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고,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진짜 용기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물론 쉽지 않다.
다음 날, 켄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켄이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큰 이슈는 뭐야?” 나는 조용히 밥을 먹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기억나는 한국 기사를 몇 가지 말했다. 켄은 흥미를 느끼며 추가 질문을 했고, 나는 익숙지 않은 독일어 시사용어로 문장을 조합하느라 애를 썼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마음이 불편했다.
10분 동안 대화를 억지로 이어가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지만, 식사 후 나는 절망감에 빠졌다. 해방감에 취해 이제 모든 걸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 무너진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 “밥 먹는 중이니 대화는 나중에 하자”는 이 쉬운 말조차 하지 못하다니! 그 말만 했어도 밥을 더 맛있게 먹고, 대화도 더 편안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좌절해 거의 울먹이는 나에게 켄은 내가 불편한 줄 몰랐다며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나는 그것이 켄의 잘못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억지로 이어간 내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잘못된 신념을 바꾸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니 더 어렵다. 한 번 성공했다고 계속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어려운 문제는 잘 해결하면서도, 이렇게 쉬운 문제에서 또다시 바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다행히 단편 영화가 아니다. 작은 결심으로 하루를 성공적으로 이끈 일이 있었지만, 그다음 날은 다시 불편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그 말은 즉, 내가 배우고 있는 건 단 한 번의 대회가 아닌 매일 반복되는 도전이기에, 그 과정에서 여러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이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많은 것이 두렵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책망하며 극한으로 몰아붙이지 않기로 한다. 어떻게 몇 달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실패를 거듭하다가 이제는 가끔 성공하는 정도로 나아가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간 더 자주 성공하는 날도 오겠지.
늘 실수로 가득한 인생에서 한 번 더 실수한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겠는가? 마음을 편안히 먹고, 그날의 해방감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