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 Oct 09. 2024

필요 이상으로 오늘의 행복을 투자하지 않기로 결심하다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기

어제 새벽에 방통대 과제를 모두 제출했다.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있다. <불행은 너무 구체적인데 행복은 그냥 행복일 뿐이다> 이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그저 행복하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고, 내가 아는 것에 비해 과제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조금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성취감이 좀 더 큰 것 같다. 심지어 ‘왜 나는 괜히 영어영문학을 선택했을까’ 하는 태초적 선택부터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 계속 찾아왔었다. 사실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문학을 이 기회에 더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한 학과였는데, 아뿔싸! 나는 기초 영문법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수업을 쫓아가기 위해서 EBS에서 '로즈리 기초 문법 강의'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벅차고 벅찬, 나만의 조용한 홀홀단신 대학생활이었다.




‘열등감 극복’이라는 동기부여가 고맙기도 했다. ‘남들 다 다니는 어쩌구’로 시작해서 자꾸 남과 나를 비교하고, ‘왜 나는’으로 시작하는 많고 많은 인생사를 후회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대학교 입학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던 것인지 나조차 알지 못할 만큼 깊숙하게 자리 잡은 익숙한 열등감이었다. 지금 이 나이에도 이게 이정도로 나를 괴롭힌다면, 시간이 지난 후에는 더 깊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결정한 입학이었다. 물론, 인지행동치료 덕분에 어떤 문제의 원인을 자꾸 내부적이고 바꿀 수 없는 고정된 곳에서 찾지 않고, 외부로 시선을 돌려 변화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방법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던 덕분이 크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포괄적이고 비논리적인 자기비하에서 벗어나, 점차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나의 요 아기자기한 대학생활은 매일 퇴근 후 시작하여 잠들기 전까지 간헐적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어도 할 줄 모르면서 옆자리에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업을 억지로 청강하게 된 남편이 “거 봐라, 그거 너한테 힘들 줄 알았다”며 게임기 패드를 잡고 얄밉게 놀리는데도, 마냥 기분이 좋고 신이 났다. 신이 난 내 모습에 더 신이 나서 놀리기 바쁜 짝꿍이었다. 만 서른여덟 살. 이 나이에, 이제서야 대학생이다. 그러나 무엇을 배운다는 기쁨은 언제나 뿌듯하다.




언젠가 그런 생각에 매몰되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행복할 틈이 어디 있냐고. 지금 나를 극한까지 몰아넣지 않으면 행복한 미래는 없다고. 그런 식으로 무식하게 나를 모서리 벼랑 끝까지 몰아넣던 때 말이다. 그러나 참, 그 행복한 미래라는 게 도대체 언제 온단 말인가. 돈을 좀 벌고 나면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지금은 돈을 아끼자부터 시작해서 나는 오늘의 나에게 야박하게 굴었다. 별별 이유를 다 대면서 말이다. 행복해질 방법을 오히려 요리조리 피해 가려했기 때문인지 행복한 미래는 오지 않았고, 행복한 현재는 더더욱 찾기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그게 다 그냥 내 욕심이었던 것 같다. 지금 작은 행복을 맛보기보다 미래에 큰 행복을 느껴야지!  그렇게 자꾸만 오늘치 행복을 미래에 투자했다. 그 때의 내게 행복이란 성공, 명예, 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잠깐, 오늘을 한 번 보자. 오늘의 나는 정말 행복하다. 돈도 그냥 매일 없던 것처럼 없고, 명예도 뭐 과제 제출이 별건가? 과제 제출이라는 명예 정도 얻었고, 딱히 성공한 것도 없다. 채점도 시작하기 전이니 일을 끝마친 것에 대한 성공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무려 대학교 입학 후 첫 과제를 기한보다 이틀 먼저 제출했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해 마음 한 가득 기쁘다. 그리고 먼 미래만 바라보며, 주변과 나를 비교하고 내 부족한 모습에만 집중해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과거의 날들이 조금 안쓰러워진다. 뭐가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그때를 좀 더 떠올려보면 몇 년을 노력해서 얻었던 어떤 성취를 이룬 날에도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성취를 하고 나면 그다음 목표를 향해서 달려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압박감, 불안감, 초조함. 그 모든 감정이 나를 자꾸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얼마 전에 드디어 만화 영화인 ‘인사이드 아웃 2’를 봤다. 전작에는 없던 새로운 캐릭터 ‘불안이’가 나왔는데, 덕분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나의 불안, 나의 공황, 나의 괴로움이 모두 그곳에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작은 성취를 위해 몰아넣고, 또 몰아넣다가 극한까지 몰린 불안의 회오리 속에 갇혀 '불안이'가 텅 빈 눈으로 몸이 굳었을 때, 나의 불안이도 울었던 것 같다. 남들 눈에는 별것 아닌 것에도, 나는 왜 그렇게 내달렸는지 모르겠다. 그 작은 어떤 성취를 얻지 못하면 다 잃어버릴 것 같던 불안감 때문에 말이다.




생각해보면 불안감과 기대감은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가져다주는 것이 꼭 부정적인 감정일 뿐일까?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가능성의 어두운 면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바라보는 시야의 방향만 바꾼다면 기대감으로 바뀌는 것일까?


내가 받고 있는 인지행동치료라는 것의 효과가 이런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본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일들에 대한 나의 인지를 바꿔 행동을 변화시킨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거나, 긍정적인 결과가 예상되는 안정적인 일에만 몰두하는 경향, 또 불확실성에 불안감을 과도하게 느껴 완벽에 가까운 노력으로 극한까지 나를 몰고 가는 행동 말이다. 이 모든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나는 정말이지 깨부수고 싶다.


결국 한 단계 더 나아가 성장한다는 것은 더 좋은 인간이 된다는 것인데, 불안감을 가득 안은 채 성장하는 건 그저 성장한 것처럼 보이게끔 노력하는 것에 더 가깝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삶의 고통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데서 오기도 하지만, 결국 얻은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성장한 것이라면 잃을까봐 불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행복하고자 하는 욕구, 또는 마음이 편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어느새 집착이 되어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얻은 후에도 잃을까 두려워 다시 또 불행에 갇힌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거대한 도전과제를 내게 던지거나, 철학적이고 심오한 말들을 하진 않는다. 듣고 보면 어린아이가 배울 법한, 혹은 들었어야 하는 굉장히 쉽고 단순한 말들이다.


“내가 잘하는 것도 있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원하는 게 있으면 표현해도 돼.”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자꾸만 마음속은 옳고 그르다는 판단 이전에,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부정적인 믿음과 신념들을 쫓고 있다.


4월에 시작한 상담은 어느새 6개월 차가 되어가고 있다. 상담을 받을 때마다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간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 상담을 하며 1:1 과외를 듣는 느낌이다. 지난 한 주간 어땠는지 말을 하고, 궁금했던 나의 감정의 원인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듣는다. 다음번에는 어떻게 하면 더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다음 한 주간 배웠던 내용을 복습하며 실천해 본다. 선생님이 여러 번 강조했듯이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내 마음을 천천히 배우고 있다.


덕분에 현실에서 주어진 과제들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안의 농도는 옅어지고 기대감이 대신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다. 6개월 전의 나라면 여러 이유들을 대면서 방통대 입학도 또 포기했겠지만, 했더라도 과제를 제출했다고 기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제출한 과제들을 살펴보고 또 살펴보며 더 완벽하게 하려고 마지막 날까지 계속해서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음, 확실히 그랬을 것 같다. 또 아무도 주지 않지만 스스로 찾아놓은 온갖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결국 다 포기해버리거나, 감정적 회오리가 몰아쳤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저 아주 예쁘고 순수하게 행복한 것을 보니 그래도 내가 제법 많이 배운 것 같고, 앞으로도 더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생활도 심리상담도 말이다.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면 정말 완전 거짓말이고, 사실 아주 옅게 마음 아래쪽에 깔려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위로 기대감이 좀 더 크다. 결과가 어떻더라도 내가 한 것에 충분히 만족한다.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으니 오늘의 행복을 미래를 위해 과도하게 투자하지 않기로 한다. 이 상태 그대로 편안하게 즐겨보자. 남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보다, 남들이 나보다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만족한다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내 스스로의 평가다.


혹시라도 언젠가 또 불안이 몰려오면 오늘 내가 쓴 이 글을 읽으며 다독일 수 있기를. 얌마, 너 이렇게 생각하는 방법 그새 까먹었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