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현실과는 어딘가 조금 동떨어진 생각들을 뜻하는 단어죠. 누군가 내게 해를 입힐 것만 같은 피해망상, 모든 것이 나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 관계망상,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과대망상 등 그 내용에 따라 종류를 분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혼란스러운 생각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망상이라는 증상의 발생 기전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하고, 최근에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의 불균형이 그 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어요.
도파민은 우리에게 조금은 익숙한 호르몬인 것 같습니다. 흔히, ‘도파민이 오른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도파민은 보상이나 쾌락을 느끼게 하는 신경회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경회로에 작용하며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데요. 예전에 한 강연에서 도파민이 형광펜처럼 우리에게 보상을 줄 수 있는 자극들에 체크를 하는 역할을 하고, 때문에 도파민의 불균형이 조현병이나 다른 정신과적 질환에서 나타나는 망상의 기전일 수 있다는 인상 깊은 가설을 듣게 되었어요. 불필요한 곳에도 형광펜으로 마구 색칠을 하게 되는 거죠. 이를 조금 각색해서 ‘형광펜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여 환자들에게 들려주곤 했답니다. 스스로가 겪는 힘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치료에 집중할 수 있길 바라며. 늦은 밤 면담실에 앉아 형광펜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던 서툴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함께 고민했던 밤들이 이제는 다들 조금은 평안해졌길, 그리고 아직 도움의 손길을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그 손이 어서 닿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