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전쟁이나 큰 사고, 폭행처럼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사건을 겪은 뒤에 생긴 트라우마와 관련된 질환으로,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어지곤 해서 그런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용어인 것 같습니다.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작은 단서에 대한 반응과 회피 외에도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감정 상태라던지, 흥미 저하, 집중력 저하와 같은 만성적인 증상들도 함께 나타나기도 해요. 우울증과 같은 다른 질환이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고, 섞여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특정 질환으로 딱 나누어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꼭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정도로 큰 트라우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종 과거의 기억에 괴로워하곤 하죠. 트라우마가 될 법한 어떤 기억에 대해 초반에 나타나는 감정들(불안, 우울, 분노 등)은 사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나를 괴롭히는 나쁜 기억과 생각을 덜어내기 위해 마음속에서 커다란 감정난로를 켜고 뜨겁게 에너지를 소비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그런데, 때로는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도 나를 괴롭게 합니다. 마음 한편에 그날의 내가 같은 자리에 앉아 남을 탓하고, 때로는 나를 탓하는 생각들을 매일 일기에 적고는 하죠. 이런 생각들은 또 다른 연료가 되어 끊임없이 감정을 태우고, 어느새 소중했던 것들마저 새까맣게 그을려 잿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나에게 행복은 너무나 먼 이야기고, 모든 것이 가치가 없어 보일지도 몰라요.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수도, 바꿀 수도 없지만, 그래서 너무 괴롭지만.. 또 지난 시간 동안 뒤쳐진 것만 같은 내 모습이 아프지만, 새롭게 적어갈 수 있는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를 위해. 때로는 그날의 나에게 편지를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많이 힘들었지만, 나 여기까지 잘 왔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씩씩하게 걸어가 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