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가 되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기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삶이 무채색으로 변해 아무것도 재미가 없고, 주변의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거였죠. 원래 에너지가 넘치는 성격도 아닌 터라, 더 가라앉아 버린 제 모습이 주변 사람들을 상처주기도 했던 것 같아요.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가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 고통, 슬픔을 마주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어젯밤 잠들기 전 고민했던 제 인생 속 걱정거리들은 정말 보잘것없는 작은 투정처럼 느껴지곤 했어요. 그렇게 점점 내가 작아지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무채색으로 변하곤 했습니다. 이런 거에 짜증내서 뭐 해.. 걱정해서 뭐 해.. 큰 일도 아닌데, 저런 거에 재밌어하면 뭐 해.. 세상은 그렇게 힘든데.. 자꾸만 가라앉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면서도, 일을 처음 시작한 거니깐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다그쳤답니다.
하지만, 저를 만나러 오는 환자들이 제게 원하는 건 함께 색을 잃어가는 건 아닐 것이 분명했습니다. 제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 제가 내린 정답은 ‘함께 색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따뜻한 색을 나누어 주는 것’이었어요. 누군가에게 색을 나누어주기 위해 우선, 나부터 색을 채워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왕이면, 따뜻한 색으로 가득 채워 봄처럼 은은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며 저만의 색을 채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