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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너하리 Jul 04. 2024

#. 우울한 기분이 어떻게 약으로 좋아지나요?

정신과의사의 일기

#. 우울한 기분이 어떻게 약으로 좋아지나요?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을 떠올려보면, 약을 먹는다고 진짜 이게 나아질까요? 어떻게 약으로 기분이 좋아지나요? 같은 약에 대한 궁금증이었던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나 염증, 골절이 생긴 게 아닌 터라, 약을 먹고 치료를 해서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환자들에게 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호르몬과 문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우울증이 생기는 원인은 사실 다양합니다. 유전적 요인과 스트레스,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의 불균형, 코티솔, BDNF라고 불리는 뇌 내 영양물질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할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 불균형까지 지금까지도 여러 연구를 통해 다양한 기전과 가설들이 밝혀지고 있죠. 그중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은 우울증이 생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치료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항우울제는 바로 이 세로토닌이라고 부르는 호르몬을 조절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그럼 어떻게 우울증 약이 우울한 기분을 조절하는지 알아볼까요?

세로토닌은 다행감, 안정감, 행복감을 느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세로토닌이 부족해지면 무기력함, 우울감과 같은 증상을 경험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단순히 부족한 호르몬을 넣어주면 그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랍니다. 한 번 호르몬 불균형이 시작되면, 호르몬이 지나는 신경회로에 놓인 수용체, 즉, 호르몬이 들어가는 문에 변화가 생깁니다. 우울증이 생기면 호르몬이 지나는 길에 엉뚱한 문이 잔뜩 늘어나 가뜩이나 부족한 호르몬이 본래 가야 할 곳으로 도달하지 못하고 길을 헤맨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점점 발 길이 끊기면 감정을 담당하던 문은 굳게 닫히고 맙니다.(사실, 여기엔 더 복잡한 기전이 있답니다. 시간이 지나며 호르몬이 줄어들면 조금이라도 호르몬을 받아가려고 또 다른 문들이 잔뜩 늘어나며 수용체들이 과민해집니다. 하지만, 결국 호르몬은 제대로 도달하지 못하고 불균형만 심해지고 말죠.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의미에서 편의 상, 문이 닫힌다고 표현했습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 호르몬이 지나는 신경회로에 놓인 엉뚱한 문들을 바로잡기 시작합니다. 문 앞에 지키고 서서 호르몬이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하죠. 하지만, 곧바로 문을 없애지는 못하기에 약을 불규칙하게 복용한다면, 호르몬이 다시 엉뚱한 곳으로 새 버리고 말겠죠? 꾸준한 약물 복용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또한, 사람마다 문의 생김새가 달라 필요한 약이 다를 때가 많아요. 세로토닌뿐만 아니라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다양한 호르몬이 우울증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복잡성 탓에 내게 맞는 약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죠. 호르몬 불균형을 바로 잡고 서서히 예전처럼 균형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효과가 더디고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약이 필요한 경우에는 꼭 약물치료를 권하는 편이에요.

약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당장 내게 닥친 환경이나 경제적 어려움, 틀어진 관계 등을 약이 회복시켜주지는 못하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약이 분명 꼭 필요합니다. 다리에 골절이 생겼는데, 전혀 치료를 받지 않은 채로 급한 일을 해결하려 노력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노력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노력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골절을 입은 당신이 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치료를 망설이고 있다면, 작은 용기를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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