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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너하리 Jul 18. 2024

#. 거친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정신과의사의 일기

#. 거친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거친 파도를 만납니다. 실패, 좌절, 사고, 재난, 이별 등등.. 고통스러운 파도 앞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고통이 너무 강렬해서 마음속에 계속해서 파도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때마침 조명은 전부 파도를 비추고, 거대한 파도를 피하거나 없애보려 애를 쓰지만 결국 휩쓸려 길을 잃고 말죠. 그런 당신에게 마음속에 반복해서 떠오르는 고통스러운 생각이나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보려 합니다.

수용전념치료 이론을 기반으로 쓰인 러스 해리스의 <인생에 거친 파도가 몰아칠 때>에서는 ‘닻 내리기’라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피하거나 없애려 애를 쓰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고 이름을 붙여줍니다. ‘나는 지금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몸의 감각과 연결되어 통제력을 찾을 차례입니다.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한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저는 이 부분을 잠시 관객석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무대 위에서 험난한 파도와 다투던 장면에서 잠시 빠져나와 허리를 펴고 땅을 발로 디뎌보면서 내가 감정의 파도 속이 아닌 잠시 관객석으로 이동했다는 걸 실감하는 거죠. 심호흡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해도 좋습니다. 아무리 감정과 생각이 나를 괴롭히더라도 몸을 움직이고 통제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지금, 여기로 돌아와 현실을 바라볼 차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소리, 맡을 수 있는 냄새부터 시작해서 내가 있는 곳, 내가 하려던 일, 소중한 것들을 다시 바라봅니다. 무대 위에서 조명이 여전히 고통을 비추더라도, 조명이 비치지 않는 곳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가치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다는 점을 떠올리는 거죠. 알아차리고 - 이름을 붙이고 - 몸과 연결되어 - 지금, 여기를 바라보는 것을 여러 번 연습해 봅시다.

이런 건 쓸모없어, 소용이 없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고통의 파도 앞에서는 누구나 무기력해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연극처럼 인생도 계속해서 변합니다.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있다면, 비가 그치고 맑은 날이 반드시 찾아오죠.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고통의 파도도 결국은 잔잔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닻을 내리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잠시 버텨내 보는 거죠. 때로는 마음속에 찾아온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알아차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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