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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명절의 밥상머리

그 많던 파인트 는 누가 다 먹었을까

by 정필년

밥상머리 앞은 일종의 광장이라 식구들의 사소한 논쟁거리가 밥공기 위를 떠돈다.

오늘은 냉동고에 있던 베스킨라빈스 파인트 실종사태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동생님의 청문회가 열렸는데, 이번엔 맹세코 내가 한 짓이 아니다. 한 숟갈에 김기춘...한 젓갈에 우병우...하지만 이건 정말이다. 내가 냉장고에 있는 걸 자유롭게 꺼내먹긴 하지만, 꺼내먹다 걸리면(*사실 걸리든 말든 신경쓰지도 않지만) 이실직고 하는데! 나는 진짜로 모르는 일이오...ㅜㅜ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아뿔싸 나는 참지 못하고 '끆끆끆'웃어대기 시작한다. 내가 '끆끆끆'웃을 때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어이가 없을 때, 둘째는 뻥치다 걸렸을 때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끆끆끆' 웃어버린건데 동생님은 뻥치다 자백하는 줄 안다. 나도 맛이나 봤으면 억울하지나 않다. 엉엉엉.


이 와중에 나는 동생님 추궁에 온통 정신을 뺏겨서 젓가락을 김 위에다 올려놓고 내려놓질 않았는데, 오마니께서 젓가락을 무슨 삼분내내 김통 위에 올려놓냐고 타박하신다. 그리고 니네는 왜 밥상위에서 그런걸로 싸우냐며 야단을 치며 청문회 종료. 오마니도 드신 적이 없다 잡아 때시니, 범인은 아부지인가 싶지만 내 생각엔 그것도 아니다. 결국 써리원데이에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오는 것으로 하고(*진짜 내가 안 먹었는데 왜 사와야 하는 거신가...그건 동생님이 왕이라 그런거지 뭐)

아무튼 요즘에 날 향한 구박이 늘어서 죽을 맛이다.직업이 '아들(30,식욕부자)'인 게 이렇게 슬픈 일이다 여러분.


오마니께서 김 세장을 내 밥공기 위에 올려두셨다. 그러고 셋이서 껄껄 웃었다. 우리 셋이 십분 동안 밥상머리 위에서 얘기한 게 하도 어처구니없는 것들이라 밥먹다 말고 실실 웃고 말았다. 드론 띄워서 녹화해뒀으면 <지붕뚫고 하이킥>마냥 웃긴 상황극이었을텐데, 모자란 필력으로 여기까지만 기록해둔다.


20170128_204656.jpg 명절 세시 풍속이 많이 바뀐다고는 하지만, 기왕이면 명절에 다같이 모이는 것이 낫다. 적당한 불편함을 끌어 안은 채 사는 얘기도 하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막내조카랑 놀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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