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Dec 13. 2022

익숙한 듯 낯선 이름, 죽음  

우리 모두가 가는 길


우리 모두가 가는 길



예전에 고(故) 최인호 작가가 몇 년간의 암 투병을 하면서 신간을 내고 기자 인터뷰를 했다.
기자는 작가의 병에 대한 질문을 했다.
작가는 “사람은 암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암은 감기와 같은 것이다. 암이나 감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명(命) 때문에 죽는 것이다. “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명(命)이란 것은 하늘이 정해준 수명이라는 것인데...

하늘에서 받은 명을 때가 되면 거두어 간다는 말이 숙명론적으로 들린다.

    

우리가 사라져 갈 존재라는 것을 언제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죽음에 관한 영화나 사고 혹은 가까운 누군가의 중병 소식이나 부음(訃音)을 들을 때이다.
나이가 60이 되고 보니 한 달에 서너 번은 부고를 받게 된다. 그런 소식은 서로가 주고받은 정리(情理)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반응하게 되고 쉽게 잊히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는 것처럼 잊히지 않는 죽음의 기억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 쉽게 잊는 현실에 살고 있으며,
죽을 시간도 없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여유가 없고 대부분 그런 이야기는 피하고 터부시 한다.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이라 그런지 어두운 주제나 고민거리를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도 버거운데 다른 힘든 것을 덧씌우기 싫어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조금 더 밝고 즐겁고 단편적이고 유희적이며 고민이 필요 없는 판타지 같은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무릇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붓다가 말했다.

우주만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한다.
사람 또한 만물 중의 하나이니 변화하고 사라져 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무상(無常)이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하며 시간의 영속성이 없음을 말한다.
즉 현실세계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매 순간마다 생겨나고 변화(變化)하고 사라져 가는 것이다.  

    

사람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순차적으로 겪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사(生死)나 생병사(生病死) 혹은 생노사(生老死)를 치른다.

이는 사람은 생(生)이 있으면 사(死)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다 그렇다는 것이다.
아니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큰 바위가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풍화작용으로 자갈이 되고 모래 알갱이가 되어 마지막엔 먼지로 흩어지듯이.     


허블에 이어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 보는 우주의 모든 항성이나 행성도 생성과 노화를 겪다가 결국은 소멸의 과정으로 진행되는 걸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우주에서 보면 아주 작은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지만 아주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수만 종의 생명이 살고 있는 커다란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멸(生滅)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소우주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인간도 끊임없이 세포가 생성하고 죽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세포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죽는다는 것이 피상적이고 현실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여 내 젊은 시절의 그때가 된 자식들을 본다. 나의 노화도 눈에 띄게 달라졌음을 느끼면서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언제까지나 젊은 존재로 살 것만 같았던 나의 시절도 정말 한순간이었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 위에 존재하는 유한성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연세 드신 어른들도 웰다잉(well-dying) 교육을 어쩔 수 없이 들어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세대들 중에는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실천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쯤으로 치부하거나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나 가족 혹은 가까운 이에게 ‘죽음’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다가왔을 때 너무나 황당해하고 어이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체로 자신한테만은 오지 말아야 할 대상이 온 것처럼 화를 내고 받아들일 수 없어한다. 그러나 익숙한 듯 낯선 이름의 죽음은 누구한테나 찾아온다.


            

아버지의 노환이 깊어지자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꺼낼지가 고민이 되었다. 무슨 말로 ‘죽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심신이 허약한 아버지가 그것을 수긍하실지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인 내가 연세 드신 아버지를 보고 “죽음은 삶의 다른 모습이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시라. “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도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계신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데 자식이 아버지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릴 생각은 안 하고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프기 불과 한 달 전까지도 정원에서 부모님이 일하시는 동안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100세 인생’ 이란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그때는 죽음이라는 것은 자신과는 별개의 사건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셨을 것이다.      

'죽음'이야기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 날부터 해온 나의 숙제였다. 아니 부모님께서 연세가 드시는 걸 보면서 언젠가는 ‘죽음’에 대한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 오랜동안 나의 화두였다. 남에게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정작 자신의 가족에게는 그게 되질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든일곱의 아버지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시는데 내 고민의 시간은 멈춤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았다.  

동생처럼 꾸미지 않는 표현으로 “아버지 이제 가실 준비하세요. 천국 가시는 겁니다. “라는 말은 절대 하지는 못하였다.     


아버지의 다리 통증이 덜할 때는 그것대로 괜찮은 것 같아서 ‘죽음’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고, 너무 힘들어하실 때는 더더욱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오늘도 눈을 떠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로 권해드렸다. 나중에는 수시로 오는 통증 때문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패치를 붙이고 통증 약을 드시면 부작용이 심해지고 양을 조절해도 붙이는 그때뿐이었다. 동생은 매일 아로마 테라피로 아버지를 마사지해드렸다. 하루는 좋은 신가 싶으면 다른 날은 심해지고 반나절은 괜찮으신가 하면 저녁 때는 더하고를 반복하면서 아버지의 상태는 우하향 곡선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실 거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하였다. 누구보다 생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아버지도 자신의 등불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엄마의 기도는 수시로 아버지의 귀에 대고 “좋은 날 좋은 시에 가소, 짚불 꺼지듯 가소. “였다.  그때 아버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두 분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엄마는 아버지의 두 손을 꼭 잡으셨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리며 아버지의 손과 다리만 주무르고 있었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이었다.

봄부터 가을이 오기까지, 우리 가족은 불볕  여름 아래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엄마의 바람대로 아버지는 좋은 날 좋은 시에 짚불 스러지듯 그렇게 조용히 가시 었다.
아픔도 슬픔도 모두 떨치고 평화로움 속에 눈을 감으셨다.

죽음은 돌아가는 것이라는 노자(老子)의 말처럼 아버지는 고요한 바람처럼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노자(老子)의 도(道)에서도 ‘죽음’은 ‘자연의 섭리이자 도리‘라고 했다. 그의 맥을 잇는 장자 또한 아내가 죽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물동이를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를 탓하는 벗에게 죽음은 사계절을 되풀이하는 자연의 운행과 같고 천지라는 커다란 방안에 누웠기에 울고불고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하늘의 이치, 우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분지통(叩盆之痛) 또는 고분지탄(叩盆之嘆)은 아내가 죽은 슬픔을 말한다는 고사성어(故事成語)다. 이 고사성어의 유래를 보면서 장자가 한 행동은 아내에 대한 통쾌한 복수 같은 것이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성인이기에  가능했던 그것이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 중에도 우픈 얘기처럼 떠오른다.     

 

아버지를 모셔놓은 봉헌당에는 다양한 남녀노소를 볼 수 있었다. 보기에도 참으로 안타까운 20대 청춘들부터 거의 100세가 된 어른들까지. 그가 누구든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면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죽음이 부르면 거역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나이도 성별도 불문, 부자도 빈자도 불문, 모든 것이 불문이다.


왜? 란 있을 수 없다. 생(生이) 있으므로 멸(滅)이 있는 것이니까. 우리는 누구나 아이로 태어나서 빛나는(혹은 이름만으로) 청춘이었다가 몸은 늙고 마음만 젊은 늙은 청춘(노인)으로 죽음을 향해 간다. 태어난 우리 모두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 좀 더 빨리 혹은 조금 늦게.     

죽음이란 막연히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죽음에 대한 성찰은 더 미룰 수는 없는 데드라인(deadline)이 있는 숙제와도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혹은 건강검진 때 큰 병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죽음이 뭐가 다른가. 막연함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는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느끼는 만족과 즐거움에는 언제 어디서나 끼어들 수 있는 죽음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누군가 찬물 끼얹는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끊임없이 외우게 했던 로마 장군의 그 지혜를 배우고 싶다.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점을 찍듯이 살아내서 익숙한 듯 낯선 이름의 손님이 찾아오면 “ 오셨군요. 따르겠습니다.” 하고 의연하게 말하고 싶다.

고 최인호 작가가 말한 나의 명(命)이 다한 그 어느 날, 나를 찾아온 그를 주저하지 않고 따라나설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고최인호작가 #명 #제행무상 #무위자연 #메멘토모리


행복한 이기주의자   by  해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