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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Dec 26. 2022

잠수종과 나비

             나비처럼 자유롭게

  

내 이웃에 친구의 동생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간경화로  예후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정을 나누고 살던 동생이라 그 소식은 참으로 안타까웠고,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한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어설픈 위로가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아서 어쩌다 마주치면 손을 잡고 힘내라는 말과 간식 정도 건네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때를 생각해보니 동생네의 상황은 참으로 암담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당시에 그들을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나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건넨 책이 <잠수종과 나비>였다. 


“이런 믿을 수 없는 상황의 사람도 살려는 의지가 대단한데 너의 남편은 분명히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였다.


그러고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그 동생과 그녀의 남편이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은 날들을 채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는데, 무례가 되지는 않았는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살고자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비쳐진 것은 아니었는지 새삼 미안해진다.     


그리 머지않아 그 동생의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동생네도 조금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그 죽음에 대해서도 슬펐고 정을 나누던 그 동생의 떠남도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우리 삶이라는 것이 어떤 큰일도 그리 오래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나 내 일도 그렇듯이  남의 일은 더욱더 세월이라는 시간에 밀리고 퇴색되어 갔다. 그때 나는 너무 젊었고 일상적이지 않은 죽음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영원한 부재(不在)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였다. 

    

몇 달 전에 다시 이 책을 만났다. 오래전에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와닿았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미뤄두었던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해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잠수종과 나비> 책을 쓴 이는 ‘로크드 인 신드롬(ROCKED IN SYNDROM)’이라는 뇌졸중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이다. 뇌의 일부분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는 것을 뇌경색, 혈관이 터지는 것을 뇌출혈이라고 한다. 그 부분의 뇌가 손상되어 나타나는 신경학적 증상으로 말과 행동을 의지대로 안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주변에 들려오는 소식 중에 1/3은 뇌졸중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으로 인한 뇌혈관이 막히는 증상에 의한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으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치료가 되었을 때는 살 확률이 높은 질병이다. 가끔 뇌졸중으로 인한 후유증 치료를 위해 편마비의 몸으로 아파트 주변을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도 있다. 오랜 시간을 운동과 치료로 완치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우리 아버지도 노환이 뇌졸중으로 진행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야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왜 진즉에 읽고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의 마음이 들었다.     


40대 초반인 장 도미니크 보비(Jean Dominique Bauby)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지금은 인터넷 주문으로서점에 잘 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서점의 잡지 코너에 <엘르>지가 있었다. 장 보비는 그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프랑스에서는 주목받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만만함을 넘어 오만한 듯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던 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죽음보다 무서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는 사고 직후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전신마비였다. 그리고 그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왼쪽 눈꺼풀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던 것이다.  

이 순간 나는 카프카의 '변신' 혹은 '맥거핀'을 떠올렸다.

   

'생각'이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잠수종과 나비>의 저자인 주인공 보비(장 도미니크 보비)는 

글에서

     


오늘 아침, 동이 트자마자 119호 병실에서는 성가신 일들만 계속해서 벌어진다. 음식물 섭취를 조정하는 기구의 경보 장치가 30분 전부터 아무도 없는데 계속해서 울려댄다. 머리를 갊아먹는 듯한 끈질긴 삑삑 소리만큼 바보스럽고 절망적인 것이 또 있을까. 게다가 내 오른쪽 눈꺼풀을 봉해 놓았던 반창고가 땀 때문에 떨어져,

반창고에 붙은 속눈썹이 고통스럽게 내 동공을 찔러댄다. 설상가상으로 소변 배설 존데의 접속관이 빠지는 바람에, 나는 완전히 오줌벼락을 맞고 말았다.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나는 앙리 살바도르가 부른 옛날 노래의 후렴을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어서 와요, 베이비, 이런 일쯤은 별거 아니죠,”      



나의 슬픈 감정은 면역이 되지 않았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참담한 일이 있다는 것도 놀랍고 보통사람은 쉽게

겪는 일도 아니니 저자로서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가슴 저리게 아프고 슬픈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의지는 한계가 없다는 것 또한 경이롭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였다. 


그의 강한 삶의 에너지는 그 자신을 그냥 누워서 포기하거나 또는 주저앉아 무기력한 사람으로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의사소통 체계를 마련해 준 언어장애치료사가 아니었다면 그는 오래전에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고 잊혔을 것이다.


그의 꿰매지 않은 한쪽 눈을 이용한 깜빡임 신호로 알파벳을 지정하여 대필자를 통해 글을 써 내려갔다.  그의 사소할 수 없는 20만 번 이상의 눈 깜빡임으로 15개월 만에  ' <잠수종과 나비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가 탄생한 것이다. 그것으로 희망을 잃고 슬픔에 빠진 자신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을 선사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라지지 않는 열정만큼이나 신념 또한 강한 사람이었다. 그의 몸은 무거운 잠수종에 묶인 것처럼 자유롭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픈 미친 욕구는 더욱 강렬하였다.


그의 상상력은 멋진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처럼 종횡무진 끝간 데가 없었다. 그는 잠수종이라는 고통의 무게에 잠식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의 정신은 아주 가벼운 한 마리의 나비가 푸른 창공을 향해 끝없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어떤 것도 영혼의 자유를 제어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슬픔을 넘어 숙연함으로 독자를 인도하였다. 갑작스러운 변신으로 황당하였던 그였지만 패셔니스타답게 끝내 자신을 더욱 새롭게 변신시킨 것이다.



“흘러내리는 침만이라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 



라는 말에 어느 누구도 목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그동안 건강의 복을 모르고 툴툴거리며 일어났던

‘그 많았던 아침들’을 생각하면 죄스러움을 느낀다고 하였다.


자신 곁에 있는 아들의 목덜미를 만질 수도 머리털을 쓸어줄 수도 안아줄 수도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때, 그는 죽음보다 더한 처절한 고통을 느꼈다. 꿰매지 않은 한쪽 눈에서 눈물은 펑펑 쏟아져 내리고 목에서는 그러렁거리는 경련만이 터져 나왔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가진 아주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그것을 가지지 못한 어떤 이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절대적인 가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우리의 사소함과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그 사소함의 존재를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침을 삼킬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말을 할 수 있고 음식을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즐기고 평가할 수 있다. 기호에 따른 식사를 끝내고 디저트를 곁들인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또한 가고 싶은 곳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사소한 일상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누구에게도 고마워하거나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뇌경색 이후 돌아가시기 전  3주 정도를 뇌졸중으로 거동은 물론 말씀도 어눌하셨다. 처음에는 겨우 “어” 정도로 대답을 하실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음식을 넘기지 못하시고 죽을 드시다가 ‘뉴 케어’ 같은 유동식으로 바꿨다. 나중에는 물 한 모금도 넘기는 것조차 너무 괴로워하셨다. 우리 가족들은 ‘최선’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짐작으로 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드렸을 뿐이었다.

    

<잠수종과 나비>에서처럼 아버지의 상황을 돌이켜보았다. 말씀은 못하셨지만 생각은 훤히 다 읽고 계셨을 터였다. 그때 나는 더한 노력으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음에 대한 아쉬움과 사랑을 더 표현하지 못한 마음에 미어지는 가슴이 된다.     


잠수종 같았을  아버지의 현실과 장애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만이 짊어진 잠수종 같은 고통의 무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무거운 짐의 무게도 자신의 의지와 주변의 깊은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자유로운 나비처럼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나는 예전에 이웃집 동생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진심으로 슬펐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도 너무나 슬펐다. 그런데 <잠수종과 나비>를 읽고 있는 동안 더욱더  슬프고 슬펐고 고통을 이겨내는 한 인간의 의지에 뜨거움이 밀려왔다.


남겨진 가족들을 두고 떠나는 사람의 안타까운 마음이 읽혀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운 주제의 글쓰기가 힘들어짐을 느낀다. 하지만 인생이 계속되는 한 나는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파이팅!   


#잠수종과 나비 #아버지 #뇌졸중



                                                           Be free    by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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