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일하는 방식의 변화

by 장용범

어릴 때 유독 블록 장난감을 좋아했었다. 시장통에서 장사하느라 바쁘셨던 부모님은 우리 삼남매를 할머니 손에 맡겼는데 맏이였던 나는 혼자 노는 경우가 많았다. 블록은 형태가 갖추어진 장난감들과는 달리 내가 조립을 해야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블록으로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하던 나를 두고 어른들은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로 여기셨다. 어머니는 시장통에서 자식을 키워야 했기에 내가 밖에서 노는 것보다는 안에서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더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때의 영향인지 지금도 혼자서 꽤 잘 노는 편이다.

어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주제로 교육용 영상 촬영이 있었다. 당장 3월에 법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코로나로 집합교육은 불가한 상황이라 교육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그간 사전작업을 진행해 왔었다. 진행과정에서 몇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교육팀의 밀린 스케줄 때문에 촬영일자가 늦춰질 수밖에 없었고 영상 촬영 후 편집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도 스케줄상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대담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하니 직원들은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며 아나운서 역할을 마다했다. 전달 내용은 많고 시간은 촉박하니 기존처럼 해당부서에 넘겨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방식을 좀 달리 하기로 했다. 아나운서와 영상 편집자는 외부에서 조달키로 하고 촬영만 교육팀에 맡겼다. 업무 담당자가 시나리오를 안 써봤다기에 질문지를 만들어 줄 테니 대화체로 답만 써라며 질문지를 건네주었다. 이렇게 갑자기 테스크포스팀을 갖추어 예산 담당, 아나운서와 편집자 섭외 담당, 촬영 담당, 시나리오 담당 등으로 일을 쪼개 놓고 기일 별로 관리하다 마침내 어제 촬영을 하게 된 거다. 촬영을 마치니 어릴 적 블록 조립이 생각났다. 낱개의 블록을 하나하나 모아서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내고 다시 해체하는 방식으로 일을 한 것이다. 일의 결과는 만들어내지만 참여했던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다 흩어지는 방식이다.

오후가 되니 지주에서 전국의 지역 농축협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켜달라는 요청이 왔다. 이해가 안 되는 게 거의 4,500여 개 사무소인데 어떻게 일정을 맞추느냐 했더니 쌍방향 온라인 시스템으로 전국에서 동시에 접속하는데 이미 수차례 해봤기에 문제는 없다고 했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이제껏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재택근무라 하여 전체 부서원들 얼굴을 한 자리에서 보기 어렵고 공간의 제약도 온라인으로 간단히 뛰어넘는다. 프로젝트성 일은 관련된 사람들을 이리저리 끌어모아 진행하고 끝나면 헤어진다.

어제 드는 생각은 이런 식이면 1인 기업도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었다. 좋은 기획안만 있으면 필요한 전문가는 알바시장에서 구해 시간 단위로 참여시키고 외부 홍보나 마케팅은 유튜브나 SNS 등의 온라인 기반을 활용해 진행한다. 회의가 필요하면 카페나 공간 대여 업체를 이용하면 되니 고정비용이 들지 않는다. 취미가 뭐냐 물으면 회사 만드는 것이라 해도 될 세상이다 싶었다.

이제 새로운 것은 그만 배우고 싶은데 세상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판이 바뀌고 있으니 나는 여전히 학생의 신분 같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이지만 이런 변화의 환경이 너무도 재미있어 뭔가를 시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마케팅에 약하니 이들의 시장가치를 올릴 온라인 마케팅 기획도 괜찮아 보이고 어떤 컨셉으로 모임을 만들어 관련 전문가나 사람들을 모으면 특정 주제를 가진 포럼이나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한다. 특히 은퇴는 했지만 그간 익힌 경력과 노하우가 아까운 분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분들의 역량을 이리저리 엮어내면 그 또한 재미난 일거리가 될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하니 조만간 시간 부자가 될 날을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시작은 가볍게 하고 일을 진행하며 고쳐가다 보면 어느덧 재밌고 새로운 일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소풍을 온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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