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자리에서 쉬고 있는데 위층 동기의 전화를 받았다. 잠시 의논할 게 있다며 시간 좀 내어 달라고 한다. 뭐지? 궁금한 가운데 동기가 이내 내려왔다. 옆의 회의실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주변 이야기를 하더니 어렵사리 본론을 끄집어낸다. 올해 우리 부서에서 론칭한 계약직 조사역들의 입사 조건을 물으며 내년 은퇴하면 그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기간도 남았는데 벌써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하니 요즘 은퇴 후 걱정에 잠이 안 온다며 난 안 그러냐고 묻는다. 눈치 없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 기대되는 면이 있다고 하니 역시나 ‘돈 많이 모았구나’라고 한다. 친구가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 농담 삼아 ‘야, 그만큼 일하고 잘 벌었으니 이제는 조국과 민족,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일해 봐야지’라고 하니 그것조차 진심으로 들었는지 ‘난 먹고살 것 걱정하는데 넌 생각이 정말 다르구나’ 라기에 그냥 웃고 말았다. 사람이 한 생각에 꽂히면 주변이 안 보인다더니 친구가 그런 모양이다.
한 번씩 내가 아직 철이 없나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동기들은 은퇴 후 이런저런 걱정들을 하고 있는데 나는 너무 평온한 것 같아서다. 은퇴 후 가장 큰 걱정은 ‘돈’이다. 돈이 많으면 좋긴 하다. 그런데 지금껏 내가 큰 부자가 되지 못했는데 은퇴한다고 하늘에서 금덩이가 뚝 떨어질 리 만무하다. 그냥 있는 범위 내에서 생활하는 수밖에 없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그냥 걱정거리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다음으로 자녀들 걱정을 한다. 아직 대학생이고 코로나 상황에서 취업도 어려운데 어떡하나라는 것이다. 이해는 된다. 하지만 내가 대신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걱정을 하면 아이들 취업에 도움이 될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아이들 마음이나마 편하게 해주는 것이 더 낫다. 이것 역시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역시 패스하기로 한다.
그런데 일에 대해 생각해 보면 지난 인생 2막까지는 가족과 직장이라는 틀에서 누군가를 위한 일을 했었다면 이제는 은퇴를 해야 한다고 하니 내가 끌리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니 약간의 기대가 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어떤 질문자가 법륜 스님에게 돈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에 대해 물었다. 스님의 말씀이 이러하다. 돈은 사람들을 구속한 적이 없다. 돈은 그냥 그대로 있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돈을 붙잡고 놓지 않으면서 돈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한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벌면 된다. 문제는 많이 벌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괴롭다는 건데 자신의 능력보다 더 벌고 싶은 것이 원인이다. 이건 욕심이다. 그냥 자기 능력껏 벌고 그 범위 내에서 살면 된다. 돈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 돈의 문제일까 나의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