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작가는 백수의 삶에 대해 적정한 가이드를 해 주는 분이다. 아예 백수를 주제로 책도 내었는데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가 그 책이다.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나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하고 일찌감치 백수의 길로 들어섰는데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그 후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백수가 아주 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며 백수에게 당당해도 된다는 주장을 하는 분이다. 우리나라는 취업을 못한 청년 백수, 회사에서 해고당한 중년 백수, 은퇴를 한 노년 백수까지 각 세대별로 다양한 백수들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백수의 길로 들어설 운명이다. 고미숙 작가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모두가 백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예수나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 등이 모두 백수이긴 했다. 코로나 이후 이 사회에는 백수들이 더욱 넘쳐날 것 같다. 상황을 직시하여 정부는 일자리와 경제 살리기만 고심할 게 아니라 백수의 삶에 대한 국민적 지침이라도 내려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내후년에는 나도 은퇴 백수가 될 수순이니 이참에 백수 생활을 보낼 방법에 대해 정리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첫째, 공공재를 충분히 활용하자
어렵사리 선진국에 들어간 한국은 주변에 공공재가 넘쳐난다. 지역 도서관, 문화센터, 중년을 위한 50+ 센터가 있고 이동수단으로 따릉이 자전거, 세계 최고 수준의 지하철을 비롯 다양한 공공재들이 산재해 있다. 백수들은 이런 공공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둘째, 돈보다 시간을 들이도록 하자
백수에게 많은 것은 시간이고 없는 것은 돈이다. 가능하면 내 몸을 쓰고 시간을 들이는 일을 하자. 가까운 어딘가를 가야 한다면 조금 일찍 나와 걸어가고 식당에서 밥을 사 먹기보다 집에서 직접 만든 도시락을 싸들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셋째, 교류하고 배우기를 즐기자
돈도 없는데 어떻게 교류하냐고 하지 말자. 같은 백수들끼리 놀면 된다. 그런데 이왕이면 건전한 백수들이 좋겠다. 문화센터나 도서관의 교양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만난 백수들과 교류를 한다거나 아니면 직접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동참시키는 방법도 있다. 옛날에는 책이 참 귀했는데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책에 접근할 수 있고 도서관 디지털 자료실에서 각종 영화나 음악 감상도 할 수 있으니 백수 생활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그러다 책을 내고 싶으면 브런치를 이용하거나 POD 출판을 통해 무료로 출판할 수도 있다. 국가에서 학원비를 보조하는 ‘내일 배움 카드’를 만들어 학원 교육을 받을 수도 있고 폴리텍 대학에서 백수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다양한 기술기능 교육도 받을 수 있다. 거기서 주선하는 일자리도 많으니 원하면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백수생활에 충실해야 하니 너무 많은 시간을 투여하진 말자.
넷째, 생활의 리추얼을 정해야 한다.
리추얼(Ritual)이란 의식, 절차, 의례로 해석되는데 일종의 매일 반복되는 습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백수 생활이라도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글을 쓰고 산행을 한다거나, 오후 1-2시간의 낮잠을 자는 등의 자신만의 의식이라 보면 될 것 같다. 특히 백수는 시간관리가 무너지면 삶이 엉망이 될 수도 있기에 하루, 주간, 월간, 분기 단위의 리추얼은 정해두는 것도 좋겠다. 월, 화는 국회도서관, 수, 목은 남산도서관, 금요일은 정독 도서관으로 정해 장소의 변화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토, 일은 백수도 쉬어야 한다. 그곳에서 배우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해 사람도 만나 교류도 하는 백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다. 종교를 가져 그곳에서의 활동도 리추얼로 권할만한 활동이다.
다섯째, 백수 생활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인류가 생긴 이래 대부분의 역사는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였다. 다행히 이 나라에 사는 이상 굶어 죽는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정말 일을 하고 싶어 할까? 여건만 되면 일보다는 놀고 싶은 게 우리의 본성이 아닐까? 인류 역사에 계급이 생긴 이래 일은 늘 노예나 평민들이 했었고 귀족이나 왕족은 놀거나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백수생활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당장이라도 옛 귀족의 삶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으로 보면 인생 100년이 그리 길지 않으니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 사회는 백수가 늘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을 하면 되겠지만 하고 싶은 일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바엔 현재의 백수 생활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