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나 계획에 다소 집착하는 편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정하고 기간을 부여하며 중간 과정을 설계하는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계획대로 된 일도 많았지만 계획과 상관없이 진행되었던 일들도 숱하게 많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계획을 세워 진행했던 일보다도 우연찮게 '한 번 해볼까'라며 시작했던 일들이 내 인생에 더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대학과 전공을 선택한 것이나 ROTC 장교로 군 생활을 한 것 그리고 지금의 직장 선택과 서울 생활에 이르기까지 이들 사건은 사전에 계획을 세웠던 게 아니라 우연찮게 어떤 계기가 있었고 그 계기로 선택을 하게 된 것들이었다. 가슴으로 선택하고 머리로 계획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국민 MC 유재석은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가 자신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데 계획을 세우면 오늘도 일 하나 끝냈다는 그런 느낌이 싫어서라고 한다. 모델 한혜진도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 꿈같은 얘기라고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그들이 대충 사는 스타일도 아니다. 누구보다도 그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면 꿈이나 목표라는 게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꿈이나 목표, 계획을 묻는다는 건 정신적 고문을 가하는 거나 진배없다. 그리고 아이들의 꿈이나 목표라는 것도 대부분 과학자나 연예인 같은 직업일 뿐이다. 문제는 어떤 과학자, 어떤 연예인이냐이다. 연구비 더 따기 위해 실험조교 인원수를 조작하는 과학자 나 팬들을 돈으로 보고 목소리에 쇳소리 날 정도로 행사 뛰는 가수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리 보면 우리의 삶은 '무엇'이 되는 것보다는 '어떤'삶이냐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영화 '카타카'는 인간을 유전적으로 우성과 열성으로 일찌감치 구분해 미래의 직업까지 결정짓는다는 우울한 미래를 다룬 영화이다. 거기서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은 유전적으로 열성인 형과 우성인 동생이 수영 대결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형이 이긴다. 동생은 이럴 수는 없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하자 주인공인 형이 말한다. '나는 다시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았어'라고. 계획이란 수영을 하더라도 돌아갈 힘을 남겨두는 합리적인 그림이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능히 할 수 있는 영역이며 앞으로 더 발전될 분야기도 하다. 하지만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고 수영 대결에 임하는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다. 하루를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반복하면 유재석처럼 그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했다고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럴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불교 법문을 자주 찾다 보니 수처작주, 지금 여기에 살아라, 현재에 깨어 있어라 등의 가르침을 자주 접한다. 그런데 계획을 세우는 일은 이 말과 묘하게 배치되는 말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나도 계획을 좀 줄이자 싶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산다는 것은 아니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시간들은 좀 줄이고 끌리는 일을 하는 시간을 좀 더 늘려가려 한다. 이제는 좀 그래도 되는 시기이다. ‘싫은 건 적게, 좋은 건 자주 하다 보면 결국 가장 자기 다운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참 짧은 인생이다. 어제 97세 된 직원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참 오래 사셨다는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100년이 안 되는구나 싶었다. 마음에 들어 필사한 글이 있다.
‘인생은 너무도 짧다. 뭐 좀 해 보려고 하면 언제고 끝나도 이상할 게 없다.’
‘무엇이든 많이 해보고 경험해 봐야지 잘 선택할 수 있다. 남들 좋다는 것이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 계획을 좀 줄이기로 하자. 그래도 갑자기 끊으면 이상하니 아무리 길어도 딱 3개월 안에 성과 낼 만한 그것도 끌리는 일들로 리스트업 해보자. 그 이상은 계획이란 게 좀 무의미해 보인다. 정말이지 어찌 될지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