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을 모시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어머님은 삼사순례차 아침 일찍 나가신 터라 내가 아버님 식사를 챙겨야 했다. 아버님은 모처럼 아들과 나가는 외출에 다소 들뜨신 모습이었다. 아버님을 조수석에 앉히고 일부러 벚꽃이 피어있는 산길을 운전해 가는데 내 운전이 못마땅하신지 곁에서 자꾸 잔소리를 하신다. 출발해라. 저 길이 더 빠르다. 차선을 바꿔라 등 운전 내내 신경 쓰이는 말씀을 하시길래 나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나 보다. “아버지, 내비 속 저 여자가 가자는 대로 가고 있으니 그냥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라고 짜증 섞인 말이 나왔다. 그제야 눈치를 채셨는지 조용하셨다. 아직 내비게이션이 익숙지 않아 그렇다고 하신다. 하기야 아버님이 면허증을 자진 반납하신지도 거의 20년은 된 것 같다. 당시는 내비게이션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아버님은 온전히 당신의 감각으로 하는 운전에 익숙한 분이시다.
내 아버님의 운전 경력은 꽤 오래되셨다. 50대 중반까지 운수회사를 경영하시면서 전국의 거래처를 누비고 다니셨다. 당신의 찦차를 운전하셨는데 얼마나 다니셨는지 운행거리를 표시하는 계기판의 숫자들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영을 표시할 정도였다. 그런 아버님이 운전면허증을 반납한 것은 어머님의 강력한 권유 때문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졸음을 자주 느끼고 방향 감각도 예전 같지 않음을 눈치챈 어머님이 당신의 운전대 잡는 것을 한사코 만류한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버님은 40년 가까운 운전 경력을 끝내셨고 이후 활동 반경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은 여러모로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제 내 아버님의 활동 반경은 집 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실과 안방 위주로 다니시고 뇌경색을 당하신 후로는 외출도 자제하신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부산에 내려올 때 차를 가지고 온 것도 두 분을 모시고 자주 나들이할 생각에서였다. 노인이 되면 가능하면 자신의 경험을 내세우기보다는 젊은 사람들의 판단에 맡기는 게 좋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하다. 내비게이션이라는 기기가 보편화된 세상이지만 이전 내 아버님의 운전하시던 습성이 쉽게 사라질 리 없다. 옆을 보니 아들의 짜증에 조용해지신 아버님께 괜히 미안했다. 기분 풀어드릴 방법을 생각하다 최근 교장으로 임용된 동생의 학교에 가 보기로 했다. 막내아들이 교장으로 근무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좀 풀리실 것 같아서다. 마침 동생이 점심도 가능하다기에 방향을 학교로 돌렸다. 제법 시간이 걸려 학교에 도착했고 교장실에서 삼부자는 차를 한 잔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식사하러 일어섰다.
어머님은 저녁 늦게 돌아오셨다. 그날은 피곤하기도 해서 일찍 잠들었는데 이튿날 아침 어머님께 들으니 아버님은 큰 아들 차를 타고 막내아들 교장실에 들른 이야기를 뿌듯해하며 한참 늘어놓으셨다고 한다. 하, 우리에겐 그렇게 무덤덤한 척 아무런 내색도 않으시더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