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언가에 조심스러운 의사

by 이시호

가끔 뉴스에 어느 나라의 연구팀이 새로운 무언가를 밝혀냈고, 어떤 질병의 치료에서 새 지평을 열 것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병원에서 보면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딱히 없다. 환자가 와서 의사에게 어떤 약이 새로 나왔다는데 써볼 수 없을지 물어보면 의사는 보통 잘 모르겠다고 하거나 아직 근거가 부족한 약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현대 의학의 근간에 '근거 중심 의학'이 있기 때문이다.


근거 중심 의학은 말 그대로 근거가 없으면 의학으로 인정을 안 하겠다는 이야기다. 환자한테 들어갈 약, 시행할 치료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결국 어떻게 근거를 얻을 것인지, 어떤 근거를 인정할 것인지에 있다. 이 근거를 얻고 인정받는 과정이 매우 험난하기 때문에, 의사가 새로운 무언가에 조심스러운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근거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는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시간, 돈, 그리고 환자다. 시간은 최소 5년이 필요하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약을 복용하곤 하지만, 그 약이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약의 효과는 짧게 끝날지 몰라도 약의 부작용은 오래갈 수 있기에, 어떤 약이나 치료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하다.


돈과 환자는 비슷한 맥락에서 근거의 여정에 필요하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려면 당연히 돈이 많이 든다. 또한 무언가를 만든 뒤에 근거를 얻으려면 실험이 필요한데, 결국 환자에게 쓸 약과 치료이기 때문에 실험 역시 환자에게 진행되어야 한다. 근거를 얻기 위해 근거 없는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험에 참가하는 환자들의 안전을 무료로 뺏을 수는 없으니, 돈으로 그들의 안전을 사는 과정이 존재한다.


시간, 돈, 환자가 잘 모여 근거를 찾는 여정이 시작된다고 해서 근거가 항상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중간에 환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긴다면 실험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험 결과 의미 있는 근거가 나왔다 해도, 더 많은 환자에서 반복적으로 비슷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른 의사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에게 행할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과정을 거쳐 얻어진 확실한 근거만이 인정된다.


의사가 새로운 무언가에 조심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겁이 나거나 도전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의사들은 새로운 무언가에 매우 과감하게 도전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나쁠 수도 있고, 환자에게 해가 될 수도 있기에, 확실해질 때까지 환자에게 시행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대체로 뉴스에서 대단한 것처럼 소개되는 것들은 아직은 근거가 부족하여 실험 진행 중에 있는 것들인 경우가 많다. 만약 실험에서 충분히 좋은 근거가 얻어진다면, 의사는 당신이 물어보기도 전에 그 치료를 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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