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보내는 의사

by 이시호

의료에는 생각보다 많은 분과가 존재한다. 내과, 외과, 소아과 유명하지만 내과 속에 9개의 분과가 있고, 외과와 소아과 속에도 비슷한 숫자의 분과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병원 많이 다녀본 사람 아니면 잘 모른다. 분과에 대해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산부인과는 사실 산과와 부인과가 합쳐진 과고, 이비인후과는 사실 이과, 비과, 두경부 외과의 완전히 다른 세 개의 분과가 합쳐져 만들어진 과이다. 그 외에도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분과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의대생은 모든 분과에 대해서 다 공부한다. 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분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게 커리큘럼이 짜여 있다. 모든 분과를 배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나중에 의사가 되어 어떤 과에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학생 때 우선 다 배워 놓고 나중에 진로가 정해지면 필요한 지식만 꺼내 쓰는 식이다. 두 번째는 선택하지 않은 다른 분과에서 하는 일까지 알고 있어야 올바른 의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올바른 의학적 판단은, 나에게 온 환자를 나보다 더 잘 봐줄 수 있는 다른 의사에게로 보내는 것이다.


의대생 때 동네의 가정의학과 의원으로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70대 할아버지 한 분이 며칠 전부터 소변 색깔이 붉어졌다고 오셨다. 원장님은 듣자마자 간호사에게 근처 비뇨기과 명함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전화해서 이러니 저러니 해서 환자를 보낸다고 말하고는, 할아버지께 진료비 안 받을 테니 옆에 비뇨기과 가보시라고 하여 돌려보냈다. 한 시간쯤 뒤 비뇨기과에서 전화가 와서는, 방광 내시경으로 보니 암 같아서 큰 병원으로 보냈다고 했다. 원장님의 올바른 의학적 판단이 할아버지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의학적 판단을 통해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보내는 경우도 많지만, 큰 병원 내에서도 의사들 사이의 환자 주고받기가 수도 없이 이루어진다. 한 예로 수술을 받기 위해 외과에 입원한 환자의 혈압이 너무 높으면, 우선 흔하게 쓰는 부작용이 적은 혈압약을 먹여본다. 그래도 혈압이 안 떨어지는 경우에는 순환기내과에 자문을 구한다. 자문을 요청받은 순환기내과 의사는 환자를 파악한 뒤 적절한 검사와 약을 처방하고, 이후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지켜보는 과정을 통해 혈압을 조절해준다. 어떤 경우든 마찬가지다. 다른 이유로 병원에 온 환자가 혈당 조절이 안 되면 내분비내과에 물어보고, 허리 디스크가 의심되면 정형외과에 보내고, 알 수 없는 피부 발진이 생겼으면 피부과에 문의한다. 잘 모르겠을 때 나보다 잘 아는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꼭 이렇게 남한테 모든 걸 물어봐가면서 해야 할까? 대부분의 의학 정보는 오픈되어 있어서, 책을 찾아보거나 검색을 하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현 상태에 맞는 적절한 처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 찾은 대로 당당하게 처치를 하려고 보면 수많은 물음표가 떠오른다. '환자가 임신했는데 똑같이 처치해도 되나? 5살짜리 애한테는 약 용량을 얼마나 줄여야 하지? 0.1%에서 발생한다는 부작용이 발생하면 어떡하지? 내가 생각한 병이 아니라 사실 다른 병이라면? 이 약이 효과가 없으면 다음에는 어떤 약을 써야 하지?' 반드시 다른 의사에게 물어봐야 하는 이유다. 사람의 몸에는 변수가 너무 많고, 그 분야의 전문의가 아닌 이상 그 어떤 것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확신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환자의 현 상태가 크게 위험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되는 경우다. 환자의 말을 듣고 간단한 검사를 해봤을 때,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는 병으로 의심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수많은 검사를 더 하게 되면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긴 할 테지만, 놔두면 알아서 회복되는 병의 경우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환자를 만나면 지식과 경험에 근거하여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것이 환자에게 가장 이득일지 생각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환자의 이득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두고, 시간과 금전적 요소까지 고려하여 계산한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영화 <타짜>에 나오는 대사다. 모든 의사들의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증상에 대해 물어보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큰 병원 가봐", "동네 병원 가봐", "집에서 물 많이 마시고 쉬어" 셋 중 하나의 대답밖에 해주지 못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의사가 맞는지 궁금해질 수 있는 대답이겠지만, 환자를 직접 만나 이것저것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받는 게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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