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환자든,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가장 많이 겪게 되는 일이 있다. 뭘까? 따끔한 주사도 아니고, 겁나는 수술도 아니다. 정답은 바로 '환자 확인'이다. 환자 확인이란, 환자에게 어떤 의료 행위를 시행할 예정인 의료인이, 본인의 앞에 있는 환자가 의료 행위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맞는지, 의료 행위 직전에 확인하는 과정이다. 의료인이 환자 정보가 적힌 서류를 먼저 확인한 후, 환자에게 이름과 생년월일(또는 환자 번호)을 물어보고, 환자가 정확하게 대답하면 환자 확인이 성공적으로 된 것으로 판단하여 예정된 의료 행위를 진행하게 된다.
환자 확인은 원칙적으로는 장소에 상관없이 모든 의료인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행동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환자가 존재하는 대형병원에서는 그 중요성이 훨씬 강조된다. 환자를 헷갈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환자 확인을 소홀히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의료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병원은 소속된 모든 의료진에게 환자 확인에 대한 교육을 아주 강하게 진행한다. 그 교육의 결과로 대형병원에 방문한 환자들은 과장 조금 보태서 세 걸음에 한 번 꼴로 만나는 모든 의료진에게 환자 확인을 당하게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기에 귀찮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과하다 싶은 빈도로 환자 확인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오로지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다. 환자가 확인을 덜 당할수록, 의료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점점 상승한다. 이는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日蝕) 현상과 비슷하다. 환자 확인을 하지 않는 의료진은 일식 때 태양을 서서히 가리는 달과 같다. 그런 의료진이 많을수록 달은 태양을 더 많이 가리게 되고, 모든 의료진이 환자 확인을 하지 않으면 결국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 일식'이 발생한다. 개기 일식이 일어나면 벌건 대낮에 세상이 어둠으로 덮이는 기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는 앞에 있는 환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의료 행위를 하는 의료진과 같다. 꾸준한 환자 확인을 통해 환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강조하고 교육해도 의료진의 환자 확인 실패로 인한 의료 사고는 꾸준히 일어난다. 환자가 귀찮은 마음에 대충 얼버무리는 것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우연히 동명이인 환자를 만나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밤을 새우고 근무를 하다가 환자 확인을 깜빡하는 경우도 있고, 환자 두 명을 동시에 처치하다가 두 환자의 처치를 반대로 하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암환자가 아닌 사람에게 암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왼손을 치료해야 하는데 멀쩡한 오른손을 치료할 수도 있다. 처방한 약과 전혀 다른 약이 들어가게 될 수도 있으며, 심한 경우 혈액형이 다른 혈액끼리 바뀌면서 수혈받은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
환자 확인에 소홀하여 발생한 의료 사고는 병원과 의료진 모두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다.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의 한계로 인하여 발생하는 의료 사고는 슬프지만 드물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병원과 의료진의 책임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환자 확인 실패로 인한 의료 사고는 그 누구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명백한 인재(人災)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환자 확인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의료진 교육 이외에도 다양한 시스템을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기에, 환자 역시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환자 확인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