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술기’란 의사가 환자의 몸에 어떠한 목적을 갖고 행하는 의학적인 행동을 말한다. 작게는 주사에서 크게는 수술까지 모두 술기에 포함되는데, 인턴은 보통 환자 침대에서 바로 시행할 수 있는 간단한 술기를 도맡아서 하게 된다. 인턴이 하는 술기는 대부분 혼자 수행할 수 있으며, 숙련되면 시작부터 종료까지 5분도 안 걸린다. 의사가 되기 위한 국가고시에 술기 시험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인턴은 이론적으로는 모든 술기를 다 할 줄 안다.
하지만 현실은, 연습 및 시험은 모두 모형에만 시행하기 때문에 인턴 근무를 시작해야 비로소 실제 사람에게 술기를 해볼 기회가 생긴다. 3월과 4월에 병원 가지 말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그래도 대부분의 인턴은 2주 정도면 충분한 숙련도를 갖게 된다. 세 편에 걸쳐서 몇몇 술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기억나는 일화를 풀어보고자 한다.
ABGA(동맥혈 가스 검사)는 대부분 환자 호흡에 문제가 있을 때 시행하는 검사이다.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동맥(대부분 손목 동맥)에서 뽑은 피에서 분석함으로써 숨을 잘 쉬고 있는지, 못 쉰다면 어떤 이유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외에도 혈액의 산성도, 전해질 등 여러 정보를 빠르게 볼 수 있는 검사로, 급한 상황에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인턴 역시 빠르게 피를 뽑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ABGA는 인턴 간 자존심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종목이다. 주된 평가 지표는 1) 빠르게 뽑을 수 있는가? 2) 여러 곳에서 뽑을 수 있는가? 3) 어려운 환자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가? 등이다. 보통 ABGA는 응급 상황이 해결되어도 4~6시간 간격으로 계속 시행하면서 호전-악화를 확인하는데, 인턴은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같은 환자에게 여러 명의 인턴이 ABGA를 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ABGA 난이도가 높은 환자가 가끔 발생하는데, 그러면 바로 경쟁이다. 경쟁 붙이는 바람잡이 겸 심판은 담당 간호사다. 피 뽑는데 옆에서 ‘앞 선생님은 잘하시던데~’, ‘오! 벌써 뽑았어요?’ 같은 대사로 은근한 평가가 들어오면 본인도 모르게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ABGA가 자존심 싸움인 이유는 손 끝 감각이 가장 중요한 술기이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는 동맥의 박동을 느끼면서 찌를 위치를 찾고, 반대 손으로는 주사기를 잡고 혈관을 뚫는 느낌을 느껴야 한다. 또한 몸 곳곳에 있는 다양한 동맥에 시도해야 하는데, 동맥마다 깊이와 굵기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수십 번의 실패를 통해 경험을 쌓아야 한다. 여기에 환자가 협조가 안되거나,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경우에도 피를 뽑아내야 한다. 인턴 간의 손 끝 차이가 눈에 명확하게 보이는 술기이기에, 좀 한다는 인턴끼리의 경쟁이 상당할 수 밖에 없다.